최인훈광장을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

작가는 이 소설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 실재, 맥락, 시대적 상황,

시대 정신 등을 온통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다. 소설로는 사이비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전에 광장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1960년이 젊은이들의 해였다면 그것은 또한 최인훈의 해였다. 전후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장편 중의 하나라고 평가된광장이 바로 그해 10월에 독자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성찰이 그려져 있는광장을 그는 그 이후에 네 번이나 고쳐 썼다. 여기에 실린광장은 그가 마지막으로 고친 결정판인데, 거기에서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겸허한 목소리로 사랑의 위대성을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결정판은 1961년 초판이 발행된 후 30년이 지나서 문학과지성사에서 재판으로 나온 1989년 판을 말한다.)

광장은 지금까지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주인공 이명준의 깊은 갈망과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남북 간 이념,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도 치열한 성찰을 담고 있는 소설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해방 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인 최인훈의 대표작으로 또한 세대를 거쳐 거듭 읽히며 사랑받고 있는 전후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소설은 문학사상사가 선정한 국 명작소설 100에서 1위로 꼽혔고 (물론 명작소설 선정을 누가 했고 선정의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숙독해야 할 필독서로 꼽혔고, 내가 파악한 바로는 무려 200편이 넘는 논문 등이 발표되었다. 단일 작품으로는 그 유례가 없으며 수많은 학자, 비평가, 문학 이론가들의 분석, 해석과 재해석, 평가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과연 내가 거기에다 새롭게 덧붙일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고등학교 18종 문학 교과서 중에서 14종에 소단원 형식으로 수록되었다. 그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정전으로까지 인정된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무려 세 차례 (2003/ 2010/ 2018)나 출제되었다. 지금까지 중복 출제된 경우는 두 번 있었지만 (염상섭의 삼대와 이문구의 관촌수필’) 세 번이나 출제된 것은 유일하다. 고등학생들은 이 소설을 역사 서술이나 기록과 동일시 하여 그 소설의 내용을 진실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내가 심층 면접했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고 그 내용을 죽어라 암기하여 수능 시험에 대비했다고 한다. 그는 소설에 나오는 모든 (가짜) 사실을 역사적인 사실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한 사정은 대부분의 학생이 똑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소설에서 우리 국어의 아름다움을, 문장의 적절성을, 문학작품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까. 더욱이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나 교양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말이다.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 초판이 나오면서 그 무렵 소위 문지파들은 서평이나 칼럼, 대담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광장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광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초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드디어 이 소설에 대한 기념비적 비평서인 김욱동 교수의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이 발표되었다.

이 저서는광장이 발표된 지 한 세대가 지나서 나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모든 논의를 집대성한 것이다. 참고 문헌을 보면광장에 관한 국내 논문 및 저서가 44개이고, 대담 자료가 5개이며, 문학 연구 방법론에 관한 외국 논문 및 저서가 57개이다. 그러므로 고전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모든 문학 관련 이론은 물론이고 중요 작가, 문학 비평가, 문학 이론가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는데 너무 과잉 해석을 했다. 마치 극단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신성하기 때문에 자구 하나라도 허투루 다루거나 비판해서는 안 되었다. 김욱동 역시광장은 너무 신성해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였다. 그 저서에는 단 한줄의 비판도 없다. 이 저서는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에 나온 많은 논문들이 그가 해석하고 주장한 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모두들 김욱동을 본받아서인지 단 한 줄이라도 비판을 가하지 못한 것이다. 온갖 문학 이론을 원용하면서 상찬 일색이었다.

나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광장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유머러스한 점도 없고 독특한 분위기도 없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듯한 그 무엇도 없다. 이단과 반역을 찬양하는 면도 없다. 이야기 밑바닥에는 뭔지 불가해한 것도 없다.

평자에 따라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정통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역사 (실증) 주의적 관점과 작품 해석에는 철저한 텍스트 분석이 먼저라는 신비평적 관점, 역사의식을 강조한 역사주의적 또는 신역사주의적 관점, 비판적 리얼리즘에 따른 리얼리스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분석, 해석과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적 속박소설적 속박이론을 충실하게 따른다.

김욱동 교수는, 최인훈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플롯을 역사적 사실에 맞도록 고치는 데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작가는 이 소설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 실재, 맥락, 시대적 상황, 시대 정신 등을 온통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다 (졸저, ‘최인훈의 광장다시 읽기참조 ). 역사소설로서는 사이비 역사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아주 불성실했다. 역사적 실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직 신문에 난 몇 줄 기사에 의존해서 자의적으로 쓴 것이다. 그는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작가의 본분을 망각하고 갖은 억측, 오해, 편견, 독단에 의해 소설을 쓴 것이다. 독자 (비평가 포함)들을 무시하고 모독한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당시 24세인 초보 작가가 쓴 습작품에 불과하다. 김욱동이 지적한 것처럼 작가 초년생티를 아직 벗지 못했고, 작가 자신이 자랑스럽게 고백한 것처럼 문학청년의 문학 취미로 쓴 것이다. 그것도 두 달 만에 썼다. (하진 Hajin 의 장편소설 전쟁 쓰레기 War Trash는 최인훈의 광장처럼 6·25 전쟁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포로 문제를 다루면서 23권의 참고문헌을 토대로 하여 몇 년에 걸쳐서 썼는데 말이다. 하진은 이들 참고문헌의 서지 사항을 전부 소설의 말미에 적시하였다. 왜 그렇게 서지 사항이 필요했을까. 역사소설은 역사적 실재에 관해서 정확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팩트 체크는 필수적이다. 진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도처에 작가적 역량이 미숙한 초보 작가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과도하게 과대 평가 되었다. 그게 작가에게 약이 되었는지 독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김원우 작가는 편견 예찬에서 …… 일본어를 한글보다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연배인 최인훈 작가가 일본 소설 광장의 고독에서 그 모티브를 얻은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착상의 매개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광장의 대응물인 밀실같은 사색의 흔적을, 집필 도중에 저절로 달겨드는 영감과 그에 적극적으로 조응하게 마련인 잡다한 영상적, 어휘적, 반사실적 분별을 용의주도하게 깔아놓았음은 실물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바대로다. …… 한국 문단사에는 드문 현상으로서의 최모라는 이단자의 대두는 김윤식, 김현의 공저 한국문학사에서 그를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지칭한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 시인의 즉흥적 감수성으로 혼자만 알아보는 이 말 저 말을 어지럽게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적어도 이 난삽한 문장 때문에라도광장은 허무맹랑한 6·25 전쟁의 엉성한 부분도거나 작가가 먼저 자화자찬한 난해한 추상화에 그치고 있다.’ 라고 했다.

나는 뒤늦게 왜 최인훈의 광장다시 읽기를 쓰게 되었는. 그것도 작가의 사후에 말이다. 1967322일 오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은 판문점을 통하여 극적으로 탈출해서 남한으로 귀순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낀 나머지 1969127일 콧수염으로 변장하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남한을 탈출해서 홍콩으로 갔다. 그는 131일 월남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 착륙한 여객기 안에서 그 당시 베트남 주재 이대용 공사 팀에게 붙들려 서울로 송환되었다.

그해 322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고 그가 항소를 포기하자 그해 72일 오전 11시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수근은 위장간첩으로 몰려 사형된 지 49년이 지나서 서울지방법원 재심 판결에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이 아니라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그 재판은 유일한 증거인 자백이 그 당시 중앙정보부의 모진 고문과 폭행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조작 사실은 이미 2007년 과거사위가 밝혀냈다.

나는 이수근에 관한 역사소설을 구상하고 집필을 준비하면서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자료, 재심 재판의 판결문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최인훈의광장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다. (광장의 이명준과 실제 이수근의 인생행로가 닮았지 않은가. 이수근이야말로 진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남과 북의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제3국행을 택한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위 책을 집필하면서 이수근에 관한 소설은 한없이 뒤로 미루어졌고 지금까지 손도 못 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광장을 처음 읽은 것은 2019년 가을경이고 바로 그 전 해 작가는 이미 작고한 후였다. 하지만 나는 최인훈 작가나 김현 비평가를 살아생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물론 김욱동 교수도 여태 만나본 적이 없으며 그들의 책이나 에세이 등을 이전에는 단 한 편이라도 읽은 사실이 없다.

나는 이 소설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았고, 수능시험에도 출제되지 않았고, 최고의 명작소설로 추켜세우면서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지목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과대평가하면서 상찬 일색의 200여 편 에세이, 서평, 비평서, 학술 논문이 발표되지 않았다면, 작가가 대단한 명작소설을 쓴 대가처럼 거만을 떨지 않았다면 구태여 이 비평서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들은 나의 책을 사서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400여 쪽 전문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최인훈 작가가 얼마나 역사적 실재를 온통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는지, 특히 제4장에는 그 소설이 얼마나 어리석은 nonsense인지가 자세히 나와 있다. 그게 과연 소설인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오죽했으면 김원우는 최인훈의 소설은 반소설도 아니고 비소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