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간첩

 

 

첩보활동은 가장 미묘한 것이며

그것은 어디서나 필요하다.

손자

 

 

대로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흔해빠진 아파트나 현대식 빌딩 하나 없이 비좁은 골목으로 가득한 동작구 노량진2동은 오래전에 노량진 재정비 촉진 지구 로 지정되어 있다. ‘아직도 서울특별시에 이런 동네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개발을 앞둔 노량진2동은 동네 곳곳에 다양한 문제가 많았다. 오래된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지역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쓰레기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악취를 풍겼다.

중국 교포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었지만 요즈음은 흑인들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대개 한국인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주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주민센터 인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그들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교회 안에서 비를 피하던 이도 있었다. 주민들은 처음엔 국적도 몰랐지만 이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노량진2동에 모여든 이유가 있었다. 노량진2동 근처에 있는 상도동에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가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는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난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기독교 비정부기구로 난민 신청을 돕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한국어 교육을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난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역 쪽으로 내려가는 장승배기로 뒷쪽 이면 도로 골목에 그 건물이 있다. 대지 70평에 지붕은 박공벽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색이 바랜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서 있는 것이다. 1층은 북경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중국집이고, 2층은 간판도 없는 무역회사 사무실이고, 3층은 살림집이다.

유한회사 대명상사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통관절차를 담당하는 탈북민 출신의 40대 초반 남자 직원 하나,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물품을 주류 도매상에 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 하나, 은행에서 수출회사가 송부한 선적서류를 수령하고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 하나가 있고, 건물주인 40대 말인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있다.

장해식 (張咍飾) 사장은 원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데 20대 초반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갔고 그 후 중국 공산당 혁명의 성지인 산시성 연안으로 가서 모택동의 홍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국공내전 당시인 194810월 홍군이 창춘을 포위할 때 국민당군과 치열한 전투 중 사망했다. 그래서 장해식은 혁명 유가족 자격으로 동생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지원을 받아 명문 대학인 북경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그리고 20대 말에 벌써 조선족 출신 중국인 신분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제작 수출하는 한국의 대기업 북경 지사장이 되었고, 중국 내 정법대 출신 인맥을 활용해서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렸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성실하여 지독한 일벌레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 중국의 도시는 물론이고 홍콩이나 태국, 싱가폴 등지까지 출장을 다녔고 서울에도 본사와 업무 협의차 자주 왕래하였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탁월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국내 본사로 들어와 중국 담당 수출업무를 담당하며 부장까지 승진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는 중국 조선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임원급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고 작은 무역회사를 차린 것이다. 물론 그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을 무난히 취득하기는 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값싼 농산물인 호두, 땅콩, 고구마순, 버섯 등을 들여와 서울 경동시장 농산물 도매상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중국 농산물은 값도 싸고 물량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수입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반면에 북한산 농산물은 국내로 수입할 때 내부 거래로 취급되면서 관세가 면제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농산물을 중국 현지에서 싼값으로 대량 구입하여 북한 남포항에서 속칭 포대갈이라고 하는 농산물 세탁 과정을 거쳐서 북한 당국의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오면 막대한 수익이 생겼다. 그 당시 그는 그 건물까지 매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나서 지금은 칭따오에서 칭따오 맥주를 수입하고 있다.

그는 아들과 딸이 북경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내까지 북경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가족들을 만나고, 중국의 수출회사와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거의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중국에 출장을 다녀 왔다.

간첩 (스파이)의 세계란……?!

스파이도 인간이다. 통상 사람들은 첩보원의 업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며 첩보 요원 자체도 비인간적인 인격체로 보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상한 인물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그러한 인물들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웅적인 활약을 한 간첩들이라도 그들 역시 각자 독특한 개성과 성향, 괴팍함이 있는 우리 모두와 똑같은 인간이다. 공작 업무에 보통 이상의 지능지수와 아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격에는 천진난만하고 명랑하며 장난기 넘치는 유연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은 공작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위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공작원에게 이러한 자질이 부족하다면 냉혹하고 형식에 얽매여 메마르고 지나치게 엄격하여 직업적인 킬러처럼 잔인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유능한 공작원이라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공작원이 현장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본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자주 괴리가 있다. 이는 모든 정보기관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의견 충돌이 생긴 때에는 본부의 지시와 공작원의 행동 사이에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걸 조정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할까봐 두렵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하는 등의 걱정 속에 살게 된다. 종종 공작원은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긴장을 해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때가 가끔 있다. 몇몇은 깊은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여자 관계로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도박에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공작원 역시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취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인간은 시간을 잘 지키고 업무에 충실하며 인간 관계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비밀 공작원에게도 정확하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찮은 공작원일수록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자기가 수집한 쓰레기 같은 첩보를 떠벌리며 갖가지 민감한 작전에 늘 참가한다고 떠벌린다. 그런 공작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훌륭한 공작원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과 같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장해식은 청소년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이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유일하게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정통파 공산주의자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자기가 죽는 날까지 공산주의 신념에 충실할 것이다. 자기를 직업적 비밀 공작원으로 생각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관이나 공작원 중에서 파견 정부의 공식 지위 (외교관) 에서 활동하는 요원은 백색 요원이라 하고, 이와 비교해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흑색 요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흑색 요원이다.

그는 특수 요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준비 교육이 부족했지만 공작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느끼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항상 위험했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떤 길은 걸어서 통과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정거장에서 내려 갈아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등의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해 오랜 시간을 복잡하게 돌고 돌아 도착해야 한다. 누가 뒤를 밟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지루할 정도로 주위의 이 길 저 길을 걷는다. 드디어 미행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접선 장소로 간다. 미행에 대한 의심이 들면 본능에 따라 접선을 포기하고 상점에 들어가서 무엇을 사거나 하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런 개인적인 보상도 약속되지 않았지만 천생 끝없는 참을성이 요구되는 공작원의 고된 업무에 헌신했다. 정보 당국의 의심을 차단하여 보호막이 되어주는 무역업자로서의 영업 활동과 공작 거점의 총책으로서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단순한 밀고자와 같은 역할은 거부했다. 그래서 어쩌다 굴러들어오는 정보 조각이 있으면 보고하는 그런 류의 공작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임무를 훨씬 더 가치 있고 고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공작원이 된 것은 순전히 이념 때문이었다. 이것이 공작원의 특질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는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공작원을 경멸한다.

 

톈진 (天津)천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수도 베이징과는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인천과 서울처럼, 또는 평양과 남포항처럼 말이다.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약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고두현 (高斗賢) 지부장은 베이징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내려왔고 장해식은 옌타이에서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톈진으로 올라갔다. 지부장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다. 그래서 중국 외무부에서 발급한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북한 인민군 소장으로 정찰총국의 북경 지부장이다. 그 자리는 북한에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고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직접 추천 없이는 갈 수 없는 자리였다.

그는 금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정부 호위총국 행사호위부에서 10년 동안 복무했다. 그리고 호위총국에서 근무할 당시 북경대학교에 3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노동당으로 옮겨가서 대외정보조사부 (35호실)와 작전부에서 공작 업무를 담당하다가 노동당 공작부서들이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이 출범하면서 정찰총국 소속이 되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반 평생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침투와 파괴, 폭파, 살인, 공작과 역공작, 간첩과 이중간첩, 위선과 가면의 스파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얼굴은 온화했다.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그런 어두운 얼굴이 아니다. 그의 그윽한 시선은 사람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힘이 있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 첫 햇빛이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공기는 나른하게 어른거린다. 정오 무렵이 되자 태양은 꼼짝하지 않고 정지해 있지만 용광로 같은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경전철 9호선을 타고 탕구역에서 내리면 바로 짝퉁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양화 (洋貨) 시장으로 갈 수 있다. 그들은 그 시장의 남쪽 좁은 이면 도로에 있는 중국인들만 상대하는 낡고 허름한 3층 건물 호텔에서 만났다. 로비에 있는 중국 식당 별실이었다. 천장에는 낡은 선풍기가 느릿느릿 돌아갔다.

지부장이 말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지요. 너무 더워…… 끈적 끈적하지. 남조선은 어떻습니까.”

장 동무가 말했다.

올해는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남한도 마찬가지이지요.”

중국 친구와 몇 번 와 봤는데 여기 음식이 괜찮아요.”

저는 처음입니다만……

우리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이야기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오. 자유스럽게 합시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도…… 너무 오래되었소. 우리는 비밀회의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은어나 암호화된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 거요. 식탁에서 대화는 가볍고 유쾌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그래도…… 모처럼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는 거……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하니까 가끔 입이 근질근질하지요.”

축하하오! 장 동무! 이번에 대좌로 승진 되었소. 만약 조국이 통일되면 경기도 지사 아니면 인천 시장쯤은 문제없을 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그건 잘 아시오. 내가 적극 추천했단 말입니다. 남쪽에 있는 우리 고첩 가운데 15년 넘게 활동한 경우는 드무니까. 이중생활의 고통이란…… 위험하고 힘들지. 호랑이 굴에서 살고 있는 거란 말이지. 내가 잘 알고 있소. 언제가 귀환하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오.”

저에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정통으로 공작원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직계가 아니라 몇 계단 떨어진 방계이지요. 저는 명색이 간첩인데 아직 총 한 방 쏘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이제는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해요. 동무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셔요. 나는 호위총국이 지겨워서 자진해서 전출을 요청했어. 모험을 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젊은 장교 시절 휴전선 침투도 여러 번 했고 공작선을 타고 해안선 침투도 많이 했었지. 그리고 몇 번쯤 아주 위험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고첩은 할 수 없었어.

사람마다 특징이 있는데 나는 위험하지만 짧은 순간 끝나는 특수 임무가 체질에 맞는 거야. 그러니까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조직하는 데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 고정 간첩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거요. 그 긴장감을 이겨내려면…… 엄청난 자제력과 인내심이 필요할 거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동안의 활동에 비하면 너무 늦은 감이 있어요. 동무는 중국 사람 이상으로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 말 역시 남한 사람 이상으로 능통해요. 그러니 대중국 무역회사 사장으로는 안성맞춤인 거요. 중국과 한국에 인맥도 두텁고…… 가끔 주요 회의에서 통역도 하니까.”

그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으니까 중국어에 능통하고, 남한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남한 말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부장님이야말로 중국어라면 최고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내 중국어는 벌써 구닥다리요. 고첩은 신분을 은폐해서 장기 잠복하는 거요. 그래서 역량을 축적하여 기회를 기다리는 거지. 그게 중국 공산당이 엄격한 지침으로 삼고 있는 비밀요원의 직업화, 사회화, 합법화 원칙 아니겠소. 여기서 핵심은 직업화요. 그럴듯한 직업이 없다면 사회화, 합법화를 할 수 없고 당연히 장기 잠복은 불가능해요.

동무는 정말 훌륭하오.

내가 중국 유학 시절 중국 공산당 비밀 조직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네. 국공 내전은 뭐니 뭐니 해도 스파이 전쟁이었어. 장개석의 국민당은 첩보전에서 공산당에 완패를 했어. 국민당 수뇌부나 장개석 군대 최상층부에 자리를 잡고 장기간 암약한 거물 스파이들이 있었지. 누구는 국민당 당 중앙의 속기사로 12년을 근무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어떤 경제학자는 정부 고위 관료로 승승장구하면서 20년 이상 잠복해 있었고, 누구는 10년 이상을 장개석 토벌군 최고 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했고, 누구는 평생 동안 회사를 경영했지.

그렇게 해서 첩보전의 승리가 홍군의 승리로 이어진 거야.”

일찍이 스탈린이, ‘전시에 전투에 승리하려면 몇 개의 부대가 필요하다. 반면 전선에서 이런 승리를 뒤집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군 지휘부 모처에 심어 놓은 몇 명의 첩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작전은 스탈린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거지.”

지부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극비 사항이오. 아무도 내가 여기 오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칭따오에 간 줄로만 알고 있을 거요. 오늘은 이것저것 할 말이 너무 많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오.

여기는 안전하니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소. 문서는 비밀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지. 그래서 극비 비밀은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문서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거요. 구두로 전달하는 게 가장 안전해요.”

그렇습니다. 문서는 작성도 힘들고 읽는 사람이 자칫 행간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보안이 중요한데 북경에서 이 작전을 아는 요원은 없어요. 당연히 대사도 모르고 있소. 어차피 공작에는 무식하고 관심도 없지만 말이오. 우리는 대사를 비롯해서 대사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소. 그것도 우리의 임무 중 하나요. 걔들은 망명을 시도할 수 있거든. 그래서 대사는 우리 요원들을 경계하면서 싫어하지.

외무성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

이리로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북경이나 옌타이는 너무 위험해요. 국정원이나 국군 정보사, 보안사의 해외 파견 요원들이 무역 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해서 공작 활동을 하고 있지. 그것뿐만 아니지. 별도로 본부의 공작관들이 직접 조종하는 공작원들이 공작 활동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건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소. 걔들은 전부 블랙 요원이고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여기저기 버젓이 신분이 노출된 화이트 요원도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단 말이야.

우리 쪽에서도 국가안전보위부나 노동당 조사부, 정찰총국 요원들이 득실거리니까 보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거요. 북경에만 100명 넘게 공작원이 상주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 쪽도 믿을 수가 없어.  쥐가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보위부 방탐과에서 아무리 눈에 불을 켜도 어쩔 수 없어. 여기 톈진은 괜찮아요. 관광도시도 아니고 상업 도시이니까 무역업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 인천항에서 여기까지 국제여객선인 천인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장사치들이야. 천진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인기 있는 코스가 아니란 말이요.”

저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회사 상황은 어떻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큰 변동은 없습니다. 칭따오의 수출회사와는 거래가 원만합니다. 우리가 주문하는 대로 즉시 선적을 해주고 그러면 물품대금을 은행을 통해 송금합니다. 주류 도매상들은 아주 오래된 거래처이니까 서로 간에 믿을 만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다른 수입회사들이 덤핑을 하면서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직의 요원들과 정보원들은 끊임없이 지도 검열을 잘 해야 하오. 정신이 해이해지면 안 되는 거요. 동무는 신중하니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메모리에 어떤 사소한 것도 저장하지 마시오. 아무리 지워도 포렌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복원할 수 있으니까. 컴퓨터는 오직 무역서류만 취급해야 하오. 그리고 휴대폰을 조심하게나. 그게 편리하지만…… GPS 정보를 이용해서 동무의 동선을 삼각측량법으로 추적할 수 있단 말이오. 까딱 잘못하면 빌미가 될 수 있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법적인 거래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요. 만약 그걸 수사하게 되면 결국 모든 게 탄로나니까. 그래도 복권이 당첨이 되어서 대박이 나는 건 괜찮겠소만……

저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까요.”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아주 중요해요. 공작명은 남산1호이지. 지시 사항을 직접 충분히 전달해야 하니까 인터넷으로는……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이번 작전은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소.

장군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영감태기는 어린 시절 가정교사였어. 그래서 스승처럼 모셨단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갔단 말이오. 처음에는 설마 설마 했을 거요. 그럴 리가 없다고. 마침내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충격과 절망감을 생각해 보시오. 용서할 수가 없는 거지. 복수밖에 없어요. 조금 늦었지만……

배신자라면 예수님을 밀고한…… 누구더라…… - - - - 옷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쁜 물이 들지는……

물론입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점잖은 장로님한테서 어깨 너머로 귀동냥한 것이지요. 그분은 저에게 교회에 나와 하느님에게 귀의하라고 몇 번이나 강력하게 권유하였죠. 그렇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여태 차일피일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오…… 교회에 다니다 보면 목사님의 설교에 현혹되어 진짜 기독교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걸 조심해야 하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러저러한 단맛 쓴맛을 맛본단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지. 하지만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는 거야.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배신 아니겠소.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살면서 언제든지 사소한 배신을 한단 말이오. 누가 배신을 안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소.

하지만 말이오…… 일상적인 배신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극악무도한 반역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거요. 공화국은 배신자를 제일 싫어하오. 솔직히 말하면 제일 두려워하지. 그래서 반드시 응징을 해야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 영감태기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그것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관습이고 전통인 거 같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와 투쟁하는 것보다 변절자와 투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KGB 출신답게 배신한 스파이는 끝까지 추적해서 처리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배신자는 용납할 수 없는 거요. 언젠가 남조선에서 유명한 목사도 올라왔고 작가라는 사람도 올라왔지 않소. 그리고 김경수라는 젊은 처녀가 수령님의 품에 안기겠다고 북으로 왔고…… 그게 말이야 아주 공개적으로 왔지. 우리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내심 아주 싫어했던 거요. 배신자니까. 남쪽에서 보면 그건 틀림없이 배신자 아니겠어. 배신자는 언제든지 다시 배신할 수 있다는 걸 아시오.

배신이란 게 무엇이오? 배신자가 누구요? 밀고란 말입니다. 고자질쟁이, 밀고자란 말이오. 인간의 DNA에는 본능적으로 밀고자를 혐오하게 되어있어요.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불쾌하단 말이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걸 증오한단 말이지.

내가 예를 하나 들 수 있지. 임한영이라는 인간이…… 더러운 배신자이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한때는 주사파의 핵심 인물이었지. 말하자면 그 자가 제 발로 스스로 북조선으로 올라왔단 말이지. 수령님께 무릎을 꿇고 충성 서약을 한 후 간첩 교육을 받고 나서 노동당에 정식 당원으로 입당한 거요. 그러고 나서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간 거지. 물론 우리 공작선이 공짜로 태워다 주었지.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됐소? 그 인간이 무슨 북한인권단체를 세워가지고서는 주체사상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수령님을 대놓고 욕하고 북한을 지옥이라고 떠들고 다녔소. 혁명의 열정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회주의자로 변신한 거지. 처음에는 그의 변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 그게 말이야…… 틀림없이 매수당했을 거고 그래서 혁명 동지들을 배신한 거요. 그의 확고했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리 무슨 변명을 떠들어대도 듣고 싶지 않아요.

반동분자! 반동분자 중 가장 비열한 반동분자!

원래대로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무기징역이나 10년 이상 징역을 받아야 하는데 남한 검찰이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공소보류 처분을 내리고 풀어줬어요. 그리고 경호원까지 붙여서 애지중지 보호하고 있지. 그렇지만 그 반동분자는 몸조심해야 할 거야.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우리의 명단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말이요…… 지식인 중에서 배반자가 된 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먼저 남쪽을 배반하고 다시 북쪽을 배반한 거란 말이지. 그것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도저히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거요.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인간들은 그 모양이요. 걔들은 줏대가 없어. 그래서 아무리 사회적 신분이 최하층 출신이라고 해도 지식인이 되면 그때부터 우리 입장에서는 쓸모가 없게 되는 거요. 지식이 오염시키니까. 쓸데없는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가지고서는 혼란을 일으키지. 그러면 머리가 산만해져서 초심을 잃게 되는 거라니까. 그래서 공작원은 정직하고 고지식하고 단순해야 한단 말이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국장님은 최고 지도자 앞에서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장담을 했단 말입니다. 첫 번째 작전에서 실패했으니까 면목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참으로 중요하오.

동무도 잘 알다시피…… 정찰총국은 출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 정보기관과 공작기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효율적이지 않은 거지. 그래서 통합했단 말이오.

총국장님은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거울 것 아닌가. 그래서 무언가 눈에 확 띄는 작품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단 말이지.”

정찰총국이 새로 출범하고 나서 저도 소속이 노동당 작전부에서 그쪽으로 옮겨졌습니다만…… 소속이 다른 조직을 통합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텐데요?”

그건 사실이오. 내부적 알력과 경쟁은 단시일 내에 해소되는 게 아니지. 무엇보다도 국가안전보위부가 날뛰고 있단 말이오. 우리하고 업무 영역이 겹치니까 말이지. 거기다 군 보위사령부, 노동당 225국까지 대남공작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설쳐대니까. 그래서 총국장님이 역량을 발휘해야만 되는 거요.”

최근 보위부는 옛날 대남공작 방식과는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공작원 남파시 검거되거나 임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서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탈북자로 위장시켜 내려보냅니다. 일단 남한에서 정착하여 합법적 신분을 취득하면 그때 2차로 침투한 후속 공작원이나 국내 고첩망을 접선시켜 본격적인 공작임무를 수행케 하고 있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선 침투, 안전하게 도착한 후 지령 하달과 임무 수행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보위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우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간섭할 수 없단 말이오. 그러니 서로 간에 업무 협조도 어려워요.”

먼젓번도 준비가 소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수가 없었던 거지요. 남쪽의 국정원 조직이 생각보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놈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자본주의 개자식들이니까. 걔들은 국내외 정보 수집은 물론이고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 온갖 짓을 저지르고 있지. 오히려 대북정보보다는 국내정보 수집이 더 중요한 거야.

정신이 썩어빠져가지고 국가안보가 아니고 정권안보가 우선이요.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지. 상층부는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해요. 그리고 말이야……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떼내어 청와대에 상납한단 말이요. 그게 남쪽에서는 국고손실죄에 해당한다고 하더구만. 그러니까 오래전 일이 아니야. 정권이 바뀌니까 무소불위의 국정원이 검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전직 원장 두 사람이 구속되고 2차장은 자살까지 했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당초부터 그런 목적으로 설립한 거요. 그래서 김종필이가 미국의 CIAFBI의 기능을 버무린 괴물을 만들었다니까.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지. 글쎄 박정희가 바로 중정 부장한테 살해당했단 말이야. 박정희의 눈과 귀, 손과 발이었던 부장이 직접 확인 사살까지 했어.

그러니까…… 물불 안 가리고…… 비정한 집단이기도 하지. 피차 마찬가지란 말이지. 우린 오랜 적수이지만 서로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어. 악명 높은 김형욱 부장을 살해하는 데 중정이 깊숙이 개입했어. 김형욱은 1992년인가 그 무렵에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았으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냥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죽은 게 틀림없어요. 자식이 말썽꾸러기 아버지를 죽인 셈이지.

그것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북을 이용해먹고 있소. 그래서 맨날 간첩 조작을 하고 북풍 조작을 하는 거 아니겠소. 생사람 잡아서 간첩 만드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오. ‘인혁당 사건이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도 그렇고 수지 김 사건도 그렇소. ‘아말렉 공작이란 게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북풍을 조작하는 거였소.”

그 사람들은…… 못하는 짓이 없군요.”

다시 강조하지만 물질은 정신을 이길 수 없소.

공화국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필요하단 말이오. 부패한 자본주의에 동화되면 안 되는 거요.

북조선이 유토피아는 아니요. 물론 실패한 유토피아도 아니요. 처음부터 유토피아는 없었소. 소련에서부터 혁명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단 말이야. 그렇지만 공산주의도 결국 인간이 하는 짓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는 거지. 공산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니까 인류의 위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어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중도 좌파라고 하는 사회주의가 유행하고 있지만 그건 공산주의의 변형에 불과해요. 공산주의 대의에 적당히 물타기를 한 게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공산주의 때문에 본격적으로 사회주의가 탄생했고 번성했단 말이오. 그러므로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오. 그게 우리의 자존심이오.

1989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 해 10월 독일이 통일되었지만 우리 휴전선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요. 경우가 다르단 말이지.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결국에는 미국도 원하지 않을 거요. 모두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 공화국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아요. 핵무기가 있지 않소. 그게 우릴 지켜줄 거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핵을 양보할 수는 없는 거요. 동요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국정원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오.

걔들은 예산을 여기저기 숨겨놓는데 남한 돈으로 1조 원이 넘을 거요. 우리보다는 10배쯤 된단 말이오. 그 돈으로 전 세계 50개 거점 도시에 해외파견관을 두고 첩보와 공작 활동을 하고 있소. 거기다 미국 CIA 등 해외 정보기관과 네트워크도 잘 되어있고 휴민트라고 하는 해외 인적 정보망도 잘 갖춰있어요. 전국 지부가 1급 관리관이 부서장인 1급지 지부가 5개이고 2급지가 7개가 있지. 2급지는 200명이고 1급지는 300명 수준이오. 해외 지부는 뭐니 뭐니 해도 워싱턴과 북경이고 국내 지부는 서울 본부를 제외한다면 단연코 경기 지부가 아주 중요하지. 그런데 말이오, 속을 들여다보면 파벌 싸움 때문에 복잡하지. 너무 오랫동안 영남파가 정권을 등에 업고 득세를 했소. 호남파는 씨를 말려버렸다니까.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국정원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탈북민을 가장한 침투는 당분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열 명 넘게 발각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088월 불거진 원정화사건 때문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 시절은 햇볕정책 때문에 남북관계가 참 좋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보수 정권에 의한 공안정국입니다. MB 정부 들어서서 간첩검거가 40퍼센트나 증가되었습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111 전화 신고사이버 신고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동향은 어떻소. 그 사람들이 만든 탈북민 단체도 많던데……

지금까지 내려온 탈북민은 3만 명이 넘을 겁니다. 그런데 탈북민 단체가 대략 70개인지 80개인지가 될 겁니다. 많다고 보면 많고 적다고 보면 적을 수도 있지요. NK지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데요, 북한에서 전문학교,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최초의 탈북민 단체입니다. 회원이 무려 4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까 탈북민 단체 중에서는 규모는 물론이고 영향력과 공신력이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단합이 잘 안 돼요.

아이러니합니다만……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북에서 듣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니까 실망하고 다시 탈남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탈북민 중에서 30프로가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는 거죠. 워낙 괄시를 받으니까 분통이 터진 겁니다.”

그들 탈북민이나 단체들과 관계는 어떻소.”

우리는 같은 북한 출신이니까 정서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 문제점은 없습니다. 저는 젊은 탈북자들의 모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 젊으니까?”

그렇습니다. 젊은 탈북자들이 동아리를 만들어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동아리인 연세대 통일한마당이 있고, 탈북 청소년 대상 리더십 교육, 상담, 세미나, 교육 활동 등을 왕성하게 벌여나가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 있고, ·북한 청소년들의 모임인 영한우리가 있고,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겠소. 그런데 남산1호의 심사는 어떻게 돼가지요?”

현재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65일 입국했으니까요. 그 센터는 내곡동 본부 건물과는 별개로 시흥시 조남동에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모든 탈북자들은 센터에서 반드시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조사를 마치고 일부 교육까지 받으려면 센터에서만 대략 2개월이 소요됩니다. 지금이 6월 중순이니까 50일쯤 지나야만 센터를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원으로 가서 또다시 12주 동안 교육을 받게 되지요. 가을쯤에나 완전히 풀려나는 겁니다. 잘 빠져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하나원은 상당히 느슨하기는 합니다. 면회도 가능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외출이나 외박도 가능합니다. 외출 중에는 장기외출도 가능하고 조기수료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보안이 중요해요. 보안이 생명이야. 철저히 훈련을 받았으니까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거요.”

우리는 남산1호가 국정원 센터를 나와서 하나원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면밀히 체크할 겁니다. 그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나원도 순서에 따라 기수가 매겨진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소. 장군님도…… 영감태기도 많이 늙었으니까 건강이 좋을 리 없고…… 올해가 2010년이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소.”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장 동무의 근황을 설명해 보시오. 보고서에는 빠져 있는 부분 말이오.”

잘 아시다시피 제 관할은 충청남도, 인천, 경기도 서남부 지역인 김포, 시흥, 안산, 화성, 평택 등지이지요. 모두 해안선을 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남이 있는 경기동부나 경기남부는 관할 밖이지요.”

그렇지. 우리는 분리 분할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오. 남의 일에 대해서는 알아도 안 되고 간섭해서도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그쪽과는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거요. 우리가 포섭하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것을 아시오. 우리 쪽에서 신분을 밝히고 접근하면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도망가요.

이건 말할 수 있지. 경기동부연합이건 경기남부연합이건 간에 역할이 끝났다는 거지. 당초부터 구체적인 실체가 있었는지 의심스럽고…… 그 명칭도 그들 스스로 작명한 것인지, 언론에서 지어준 건지도 명확지 않아. 지금은 거의 소멸된 거나 다름없어요. 그 잔당들이 조금쯤은 지하로 숨어서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 PD 계열과 NL 계열이 일시 동거했다가 서로 싸우고 헤어진 거야. PD 그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의한 러시아 혁명을 모델로 삼은 거지만 우리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 그건 사상적 사대주의라고 할 수 있어. 당연히 주체사상을 신봉한 NL 그룹이 압도할 수밖에 없었지. 뻐꾸기가 지빠귀 둥지를 빼앗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어느 쪽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 걔들 포섭하려고 접근하면 대부분 꽁무니를 뺐어.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딱지가 붙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으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단 말이야.

처음 주사파가 등장하니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오. 드디어 결정적인 혁명의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던 거요. 뭔가 한 줄기 희망이 보였소.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전부 민족해방(NL)을 표방하는 주사파가 주도했어. 아주 고맙게도 남쪽 주사파는 독자적으로 주체사상을 수용해 대학 운동권의 주류 세력으로 부상했단 말이야. 걔들은 반미 자주화 노선을 내걸었어. 198610월의 건국대 사태는 놀라웠지. 구국학생연맹이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의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니까. 그리고 1987년에는 NL 계열의 총학생회가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대협)가 결성되었지.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마침내 접촉을 시작한 거야.

걔들 말이야…… 김일성 주석님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들이었어. 그걸 군사독재정권이 악랄하게 조작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 사상을 신념화했으니 정말 진심이었다니까. 그래서 일찍부터 김일성 주석님이 교시한 대로 1995년은 분단 50주년이 되니까 통일의 원년으로 삼자고 했고 이에 운동권이 호응해서 총궐기를 하자고 했지만 걔들은 다 빠져나갔어.

우리가 순진했는지 무지했는지……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지. 너무 흥분했었다니까. 결정적인 시기가 되자 꽁무니를 뺀 거요. 아주 얄팍한 기회주의자들이니까.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적당히 안전한 곳으로 빠진 거지. 그리고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할 때 나는 공산당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지. 그 대신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다시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 형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니까. 우리의 평생 동지인 비전향 장기수들은 끝까지 버텼지만……. 걔들은 생각만 해도 신물이 나지. 속은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거야.

그러니까 뒤늦게 그들의 정체를 파악한 거요. 다 똑같다고. 입만 살아가지고. 다시 말하면 한때 운동권이었다고 내세우면서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요. 좌파라던가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신선한 매력을 풍기거든. 자신의 일신 영달을 위해서 북을 제 마음대로 이용했단 말이오.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쓰레기들이란 말이오. 그것들은 평생 빈둥빈둥 살아서 이용 가치가 눈곱 티끌만큼도 없으니까 절대 접근하지도 말고 포섭을 시도해서는 안 되오.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뀌면서 강제 퇴출당한 국정원 출신 전직 직원이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19984월에 주로 영남파에 속하는 600여 명이 대기 발령을 받았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틴 직원들은 19993월에 이 핑계 저 핑계로 직권 면직되었소. 이명박 우파 정권이 들어서니까 반대로 좌파 정권 시절 잘 나갔던 직원들이 귀책사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쫓겨났지. 걔들은 머릿속에 온갖 울분과 증오, 불평불만이 가득 들어있을 거라고.

그리고 국책 연구기관의 전 현직 관리, 연구소나 대학의 학자, 연구원, 방산 업체의 임직원들이오. 그들에게 치밀하게 접근해서 포섭해야 한단 말이오. 물론 포섭 대상에게는 금전이나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 있고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아첨에 약하단 말이야.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야 하지.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이데올로기와 자존심이 중요하오.”

지금 보고드릴 단계는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지금은 예비적 단계입니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접선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할 거요. 동지를 포섭할 때는 눈빛에 주목하시오. 눈빛 속에 그 사람의 본질이 들어있단 말이오.”

…… 부끄러움을 타니까 사람 얼굴을 정면에서 쳐다보지 못하는데요……

가끔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소?”

글쎄요……?”

지금 중요한 것은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서부 해안 지역이요.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황해도와 연결되어 있고 황금어장을 끼고 있지 않소.”

서해안 일대 선착장에는 1톤도 안 되는 작은 낚싯배에서부터 10톤이 넘는 꽃게잡이 어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어선이 수없이 정박해 있습니다. 외지에서 온 바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섬들이 있습니다. 풍도, 송봉도, 덕적도, 백아도, 울도, 가덕도 등 섬들이 널려있습니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바다낚시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낚싯배나 어선을 가장해서 침투하거나 탈출하기가 용이하지 않겠소. 거길 빠져나오면 바로 공해상이니까 우리 측 선박들이 대기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단점이 있긴 합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서 상어급 신형 잠수함이 작전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 대신 수심이 깊은 동해가 있지 않소. 서해안의 해안선, 섬들, 무인도, 해수욕장, 주요 시설 특히 군의 경비 초소, 레이다 기지를 정탐해야 한단 말이오. 오천분의 1 최신 정밀지도도 필요하오. 그리고 서해안의 조석과 조류, 다시 말하면 물살의 흐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오. 특히 북방한계선(NLL) 부근 연평도의 물살이 중요하단 말이오. 거기가 황해남도 개머리와 등산곶과 연결되어 있지 않소.

우리 전선서부지구 사령부가 작전 지휘를 하고 수산사업소 어업지도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정확한 남쪽 자료가 필요하지. 그건 해양경찰청이나 국립해양과학기술원에 중요한 자료가 있을 거요.”

그곳 바다는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조류가 하루에도 6시간 간격으로 4번씩이나 바뀝니다. 그때마다 물살의 빠르기가 달라집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과 썰물이 시작되는 시각, 고조와 저조에 이르는 시각, 물살의 속도 등에 대해서는 늙은 어부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로한계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적용해서 무조건 구속했던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바다에서만 살았으니까요. 그 시절에는 위성항법장치(GPS)나 전자해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아닙니까.”

연평도 주둔 해군과 해병대의 동향에 대한 정찰을 좀 더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건물의 사무실을 거점으로 해서 강화도에서부터 충남 태안반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잠수정이나 모터보트를 타고 와서 해안 침투가 용이한 지역입니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군부대의 경계 상태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선들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면서 자세히 관찰하고 감쪽같이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지만 군사기밀보호법이 보호하는 극비 기밀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신형 구축함이나 잠수함 관련 정보는 해군 본부나 방사청, 조선소에 정보원이 침투하여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소. 그 부분은 장 동무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요. 우리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극비 비밀은 주한 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1991년에 철수했지만 또 다시 재배치될지 여부이지. 남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나서면 미국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재배치를 들고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남한의 조선소에서 4,000톤급 핵잠수함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지, 그러면 미국 측에서 저농축 우라늄이라는 핵연료 공급이 가능한지도 꼭 알아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362 사업으로 추진했다가 논란 끝에 중단되었지 않소.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초소형 원자로 개발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을 거요.

그리고 또 있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일차적 정밀타격 목표인 군 레이더기지, 미군 부대, 원자력 발전소, 국정원 본부, 기무사령부 본부, 청와대, 국방부 합참 청사 등등의 좌표를 정확히 파악하는 거요. 초전박살이라고 하지 않소. 그런 것들은 미사일로 초전에 박살내 버리는 거지. 우선 급선무는 한미연합합동지휘소의 전쟁연습 프로그램이 중요하고…… 남한 정보 당국의 감청장비의 종류와 성능 역시 그렇소. 그게 국산인지 수입품인지, 수입품이라면 어느 나라 제품인지 그걸 알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너무 최고급 극비 정보이니까 우리 영역이 아니야. 모른 척 합시다. 이런 사항들은 인민군 총참모부의 최대 관심사요. 정찰총국 본부나 총참모부에서는 별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거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요?”

내 생각에는 우수한 해커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을 거요. 걔들은 사이버 테러까지 할 수 있으니까.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해서 해커 집단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어요. 그게 네트워크 관리 업체의 시스템에 접근해서 기밀 정보를 빼내는 모양인데…… 사이버 공격의 진화 속도는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해킹이 불가능한 영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그걸 막기 위해서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보안 솔루션이 필요한 거고. 내가 보기에는 결국 창과 방패의 싸움인 거지. 뚫리느냐 아니면 철벽 보안이냐. 그렇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네. 워낙 정교한 기술 분야이니까.”

저희 사무실의 컴퓨터 장비는 아주 초라합니다. 해킹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들통이 날 뿐입니다.”

잘 알고 있소…… 쓸모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 사소한 조각들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조합해나가는 것이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서로 꿰맞추면 거기에서 일관성 있는 어떤 흐름을 찾을 수 있지. 그러니까 1급 자료일 필요는 없소.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니까. 인터넷에서 흔히 떠들고 있는 2급이면 어떻고 3급이면 어떻소. 그것들하고 독자적으로 공개된 자료, 우리가 해킹한 자료를 연결하고 조합해서 머리를 짜내면 아주 쓸모있는 게 나올 수 있을 거요. 요즘 인터넷에는 일급 정보까지 넘쳐난다네. 오죽하면 인터넷에 핵무기 제조법까지 떠돌고 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극도로 예민한 정보가 널리 퍼져있지. 더 이상 우리 스파이들만의 독점적 전문 영역이 아닌거요. 자칭 판타지 사이트에서는 사람을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방법을 소개한 인육 조리법까지 나온다니까.”

잘 알겠습니다. 기막힌 세상이군요. 퇴폐적인 생활에 물들어서 자유 방종이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 병폐이지요.”

장 동무가 한국의 하와이라고 부르는 제주도에 대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올린 게 언제쯤이요?”

“2년 전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 일대를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샅샅이 현지 답사했습니다. 그 섬에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이 넘쳐나지요.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또 다시 봄이 온다고 했습니다만 제비는 육지에 오기 전에 먼저 제주도에 들르지요. 새벽 3시쯤이면 벌써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조업 준비를 시작하고, 야간 조업을 마친 어선들은 아침 일찍 포구에 닻을 내립니다. 잠에서 깬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는 깜빡 착각할 만큼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하지요.

그렇지만…… 알뜨르에서 섯알오름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검은 비석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제주 4·3 당시 희생자 추모비인데 추모비 뒤에는 웅덩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학살 현장이었지요. 1950820일 군인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한 양민 210명을 이 자리에서 총살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양민을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웅덩이가 개방된 건 그로부터 7년 뒤였는데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살은 썩어 문드러졌고 뼈는 엉켜있어 할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슬프고 기가 막혀서 한동안 내내 앓았습니다. 그때는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신열이 나고 환청도 들렸습니다. 피해자들이 경찰과 우익 청년단에게 당한 내용이 계속 꿈에 등장해 고통스러웠죠.”

이왕 갔으니까…… 제주도 고유 음식을 실컷 즐기지 그랬어.”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한 바퀴 일주했지요. 별미인, 보말칼국수, 돔베고기, 모자반으로 끓여낸 몸국,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 꿩메밀칼국수, 접짝뼈국, 제주 전통 육개장을 번갈아 가며 자주 먹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다금바리 회와 흑돼지 삼겹살, 은갈치 조림이야말로 술안주로는 최고였습니다. 소주와 함께 먹으면 정말 별미였습니다. 그런 안주로 술을 마시면 소주를 몇 병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옆에 함께 마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제주도 해안선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공작선이 침투 가능한 경비가 허술한 해안선을 찾는 것이 중요했지요. 가시 철조망이 쳐진 해안 경비대 벙커들을 일일이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해군 기지에서 군함들의 입출항을 점검했습니다. 결론은 해안 경비가 강화되어 있어서 공작선이 침투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 아닙니까. 중국 관광객이 그 섬에 엄청나게 오는데 그게 발각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또 하나 최근에는 중국 어선들도 제주도 부근 바다에서는 조업하지 않습니다. 서해로 올라온 것이지요. 서해 북방한계선 (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해안은 우리에게는 이제 쓸모가 없습니다.

서해에는 효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있습니다. 인당수는 그 옛날 중국 무역선과 우리 무역선이 오가던 서해 바닷길에 있었지 않습니까. 서해에는 연평균 우리 어선 6,000척과 중국 어선 3,000척이 떠다닌다고 합니다. 고기도 잡지만 서로 매매도 하고, 물물교환도 하고, 마약 거래도 하고, 밀수 행위도 합니다. 바다에 떠 있는 국제 암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섬에다 최첨단 해군 기지를 새로 건설하려고 준비하고 있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섬사람들은 결사 반대할 거라고. 그게 해상 수송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 결국 중국을 견제하려는 거야. 틀림없이 미국의 사주를 받았을 테지만.

내가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 섬은 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소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소.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지. 마침내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내 개인사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구만…… 글쎄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네.”

 

화산섬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 설문대할망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섬. 수려한 정취를 자랑하는 우뚝 솟은 한라산. 검은 화산암과 보석처럼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의 어울림. 거친 듯 부드러운 바닷바람. 일 년 내내 꽃이 피는 섬. 유채꽃을 시작으로 왕벚꽃이 피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름이면 수국으로 풍성하고 가을이면 온통 달빛을 머금은 하얀 메밀꽃이 만발한다. 겨울이 한창인 때도 붉은 물감을 칠한 듯 붉은 동백꽃으로 물든다. 남쪽 나라의 낭만이 흘러넘치는 섬이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너무나 아픈 역사가 있다. 194843일 일어난 사건을 제주도 4·3 사건이라고도 하고 제주도 4·3 항쟁이라고도 한다. 19484월은 예년과는 다른 봄이었을까. 겨울 동안 멀리 시베리아 동토에서 불어온 찬 바람은 한반도 남단 제주해협을 건너면서부터 한결 부드러워져서 해안가 절벽과 한라산 산허리에 가볍게 부딪혔다. 울창한 숲은 바람의 영향으로 가지들이 뒤엉켜 휘어진 채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새벽이면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해무가 해안가를 뒤덮었고 파도는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몸부림치며 포효하였다. 최근 며칠 동안 바람이 잦아들고 기온은 따뜻해서 올해는 봄이 일찍 올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마을의 돌담 밑에는 벌써 금잔화가 피기 시작했고 섬 전체에 봄기운이 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관덕정 주변 왕벚나무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제주도 섬 전체를 무려 8년간이나 뒤흔들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역사의 암흑 속에 파묻혔던 그 사건은 반세기를 지나서야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당시 제주도민 30만 명 중에서 10명 중 1명꼴로 무고한 양민들을 폭도로 몰아서 학살한 것이다. 집단 학살이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한 지역에서 학살된 인원으로는 가장 많았다. 1949년 가을쯤이 되자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산해서 귀순 또는 투항했고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의 산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한 달 내내 밀항선 크기의 작은 화물선에 실려 본토로 이송되었다. 이송 도중 배에서 마구잡이로 총살되어 바다로 내던져지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행선지는 목포형무소, 대구형무소, 서울의 마포형무소였는데 20살 미만의 청소년은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졌다.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미결이었던 그들은 형무소 운동장에 집합하여 한 명씩 호출을 받은 뒤 법무장교가 닥치는 대로 무기형, 20년 형, 10년 형 등 즉석에서 형을 언도하였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 즉시 전부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러므로 그때 화물선에 태워져 섬을 떠난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46년에 대구 폭동이라고 부르는 ‘10월 항쟁이 대구에서 먼저 일어났다. 미 군정의 식량 강제 공출 반대, 친일파 처단, 소작료 조정 등을 구호로 내세웠다. 주로 친일파 기회주의자와 독립투사를 고문하고 학살한 친일 경찰관들을 공격했다. (박헌영은 1897년의 동학혁명과 1919년의 3·1 운동과 더불어 3대 인민항쟁이라고 했다.) 1948년에는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났고 그해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08일 정부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본격적인 토벌을 위해서 여수 주둔 제14연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109일 연대 병력들이 인사계 오창수 상사의 지휘하에 동족상잔을 강요하는 제주도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4·3 항쟁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지고 학살이 그렇게 큰 규모로 자행된 것은 그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파견된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회의 횡포가 극심했고 육지 사람에 대한 섬사람의 두려움이나 적대감이란 측면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던 민란 때처럼 들고 일어난 것이다. 밤이 되면 오름마다 올랐던 봉화가 곧이어 온 섬으로 퍼지고 군중이 함성을 지르며 봉기한 것이다.


특히 서청이라고 불린 서북청년회는 대표적인 극우 단체로 그 횡포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초기에 군경은 현지인이 많았고 위계와 명령체계를 통해 제도적 통제를 받았지만 서청은 규율이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 오히려 날것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마을 사람들은 토벌대 온다는 말보다 서청 온다는 말을 더 두려워했다. 그리고 서청뿐만 아니라 시급히 청산되어야 할 잔재였던 친일파, 그중에서도 육지에서 내려온 악질 친일 경찰들이 자신들의 과거 반민족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물을 만난 고기떼처럼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섬사람들은 육지에서 몰려와 온갖 만행을 자행하는 그들에게 반발한 것이다.

미국은 남한을 점령하자마자 조선총독부의 통치기구를 그대로 계승하여 군정을 실시했다. 남한 점령군 사령관인 하지 중장은 내가 일본 총독부의 통치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운용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총독부의 기구를 그대로 인수하는 형태로 군정이 이루어지면서 숨을 죽이고 관망하고 있던 민족반역자들이 제일 먼저 돌아왔다. 그리고 친일파와 손을 잡은 우익세력이 나타났고 일제 시대 활약한 특별고등경찰(특고)들과 총독부 고위 관리를 지낸 민족반역자들이 여기에 합류한 것이다.

서북이란 원래 서관 또는 서도(경기도 북쪽의 황해도와 평안도)’북관(경기도 북쪽의 함경도)’ 지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남한에서는 서북청년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1945815일 해방을 맞은 후 몇 달 지나서 또는 그 다음 해, 그 다음 다음 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그들은 일제 시대에는 지배층에 속했던 친일파 지주계급 사람들이거나 그들과 혈연 관계인 친족들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으로 쫓겨서 내려왔다. 그래서 반공 테러 단체인 서북청년회를 조직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직계로서 가장 충실한 앞잡이가 되었다. 주로 황해도 출신이 많았고 이승만도 황해도 출신이었다. 그들은 서울을 거점으로 삼아 특히 반미, 반이승만 세력이 강한 제주도를 잔인한 폭력과 테러의 무대로 변모시켰다.

19473·1 독립운동기념일의 군중에 대한 미군의 총격 사건과 모든 제주도민을 적으로 돌린 경찰과 군의 거듭된 탄압이 4·3 사건에 이르는 출발점이 되었다. 3·1 데모 사건 이후 빨갱이 사냥의 특공대로 섬에 들어온 서북과 본토 출신 경찰들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였다. 그들이 말했다. ‘정어리도 물고기인가. 제주도 자식도 인간인가.’ 서북들에 의한 약탈, 강간, 살인이 끊임없이 행해졌다. 서북들은 걸음걸이와 풍채에서 어딘지 모르게 건달 깡패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간부급으로 행세깨나 하는 서북들은 경찰도 군인도 아닌 주제에 대낮에도 거들먹거리며 버젓이 미제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국군 토벌대는 섬을 완전히 봉쇄해놓고 작전이란 이름으로 마을 단위로 양민을 집단적으로 학살한 것이다. 초토화 작전에 의해 중간 산간 마을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고 해안 마을도 대부분 사라졌다. 도민들의 시체를 낡은 타이어와 함께 기름을 뿌려서 태우는 검은 연기가 섬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은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고 했다. 현지 토벌부대 사령관은 석유를 섬 전체 여기저기에 뿌리고 불을 질러 30만 도민이 전멸해도 대한민국의 존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9일 섬에 와서 10일 오전 관덕정 광장의 식장에서 연설을 했다. “…… 우리들은 대구 폭동, 여순반란사건 등, 공산당의 잔인무도한 파괴 공작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주도 폭동같은 대규모 반민족적 반란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나는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남기지 말고 역적 무리들을 섬멸하라고 군사령관에게 지시했는데 진압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리 정부는 아주 최근까지도 4·3 사건을 북한 노동당의 지령으로 일으킨 무장 폭동 내지 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브루스 커밍스는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봉기가 당구에서 하나의 볼이 다른 볼을 치면 연쇄적으로 이어지듯이 개별적으로 일어났다고 보았다. 정부의 폭정에 저항하는 민초들이 분노해서 일으킨 민란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봄날 들불이 번지듯 퍼져갔던 것이다. 그래서 대구 10월 항쟁에서 제주 4·3 사건으로 여순반란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순반란사건은 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만 바로 진압됐고 14연대 병력이 여수와 순천에서 차례로 패퇴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811월 중순, 지창수가 이끄는 200여 명의 잔여 병력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현상의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하여 주력 부대가 되었다. 하지만 반란 병력 중 400여 명은 진압군과 전투 중 죽었고 2,800명은 생포되어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1949110일까지 속성으로 진행된 군사재판은 410명의 반군에게 사형을 선고해서 즉시 총살형으로 처형했다. 나머지는 10년 이상의 중형이나 무기형으로 대전교도소 등지에 분산 수감되었다. 그들은 1년 후 6·25 전쟁이 터지자 모조리 총살당했다.

지부장의 아버지인 고대삼은 1949년 이른 봄 아무도 모르게 목포를 떠나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구례 쪽을 통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니 유격대 대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군복과 계급장, 견장, 모자, 훈장은 없었다. 대신 99식 구형 장총 한 자루와 수십 발의 총알을 배정받았고 두툼한 누비옷을 받았다. 먼저 총 쏘는 방법부터 배웠다. 대장이 말했다. “우리는 동지애, 형제애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우리는 저 깊은 영혼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동무들! 우리 빨치산에는 세 가지 각오가 있습니다.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입니다.”

지리산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있는데 남북으로 30킬로미터 동서로 40킬로미터에 이른다. 해발 1,000미터 이상 봉우리만 40개가 넘는 한반도 최대의 산악지대였다. 최고봉인 천왕봉은 1,915미터로 한라산에 이어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지리산은 빨치산이 숨기 좋은 골짜기가 무수히 많은 데다 대부분 비옥한 흙으로 덮여있어 숲이 울창하고 물이 풍부했다. 골짜기마다 사시사철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서 식량만 조달된다면 몇 달이고 숨어있을 수 있었다.

숲속 깊숙한 동굴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동굴은 입구가 좁았고 S자형으로 굽어 있었지만 안쪽은 넓었다. 취사를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토벌대에게 위치를 알리는 신호가 되기 때문에 취사는 동굴 제일 안쪽에서 이루어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기는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시나브로 사라졌다.

빨치산들은 맨땅에 거적을 깔고 서로 체온으로 몸을 덥히며 잠을 잤다. 고대삼은 밤이면 선잠이 들었고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면서 잠에서 깼다. 잠이 깰 때마다 사람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새삼스럽게 코를 찔렀다. 사람들은 딱지처럼 비듬으로 덮인 머리와 덕지덕지 온몸에 낀 십 년 묵은 때 때문에 몸 전체에서 숨이 막힐 만큼 쉰내를 풍겼다. 제일 연장자인 50줄의 아저씨는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늘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멩이에 대고 장죽을 두들기고 나서 빈 담뱃대를 힘껏 빨아 공기를 통하게 한 뒤 담배쌈지에서 잘게 썬 담배를 꺼내 담배통에 채워 피웠다. 그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가끔 식량 보급 투쟁에서 빼앗아온 귀한 소주를 마셨다.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그들은 낮에는 동굴 속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나왔다. 현지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속 샛길과 지형지물에 익숙했고 그래서 기습이나 매복, 도피에 능숙했다.

그 무렵 광양군 백운산의 동쪽 방면인 경남 하동군과 인접한 진상면에는 국방 경비대 15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병력의 수나 무기에서 월등히 앞선 국군 토벌대나 경찰과는 정면에서 대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밤에 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야간 행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다. 능선, 소리, 연기였다. 능선을 타면 밤중에도 뚜렷이 눈에 띄었다. 반드시 능선에서 몇 발짝 아래 울퉁불퉁한 경사지를 걸어야 했다. 당연히 길이 없고 가팔랐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요한 밤중에서는 말소리나 발소리, 돌이 구르거나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아주 멀리까지 들렸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국군이나 경찰은 유격대원을 생포하면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논두렁이나 산기슭에서 공개적으로 총살시켜버리기 일쑤였다. 걸을 수 없는 부상자나 데려가기 귀찮은 환자들은 발견하면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죽은 대원들의 코나 귀를 베어 가져가는 일도 늘었다. 부대 상관들에게 토벌 실적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북한 노동당은 19498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유격대를 남파했다. 인민군 군관학교에서 정규군 훈련을 받은 북한 출신 대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한 출신으로 강동정치학원 군사반을 조기에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노동을 해본 적도 없고 총이라곤 잡아보지 않았던 지식인들로서 공산주의 이론에만 밝았다. 노동당은 이들을 제1병단과 제3병단으로 나누어 남파하였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 지구를 맡아 제2병단으로 명명했다. 현지에서는 여전히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로 불렸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제2병단이 되었다.

1병단은 강원도 홍천군 오대산 지구를 맡았다 (지금은 오대산 국립공원이다). 태백산 지구를 맡은 제3병단은 제주 4·3 항쟁을 주도했던 김달삼이 이끌고 있었다. 태백산 중에서 제일 깊은 당골 계곡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태백산 도립공원이다). 제주항쟁 초기에 월북한 그는 강동정치학원에서 함께 교육을 받은 300여 명으로 구성된 유격대를 이끌고 동해안 영덕을 통해 들어왔다. 그래서 동해여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1병단과 제3병단은 너무 일찍 와해되었다. 오대산의 제1병단은 12월에 대규모 국군 토벌대를 만나 궤멸되었고 살아남은 잔여 병력은 태백산 지구로 남하해 제3병단에 흡수되었으나 제3병단 역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살당했다. 북으로 달아난 인원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19506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8월이 되면서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과 국군, 미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 무렵 미군 전폭기가 수도 없이 낙동강 전선으로 날아들었고 탱크를 비롯한 각종 현대식 화기가 인민군을 향해 포화를 집중하였다. 915일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군 대병력이 인천으로 상륙해 한반도 허리를 끊어버렸다. 인민군은 보급이 끊기면서 궤멸 직전이었다. 928일에는 서울이 미군에게 탈환되었고 남한에 고립되어 있던 인민군과 노동당 기관들은 허겁지겁 일제히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고대삼은 19498월 한여름 지리산 유격대의 상황을 보고하고 작전을 협의하기 위해서 연락병으로 제3병단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부대가 궤멸되기 직전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와 단신으로 이현상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 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지리산 유격대와 함께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북으로 후퇴해야 한다. 영천에서 보현산 줄기를 타고 넘어간 인민군 패잔병 대열은 울진군에 들어서면서는 일월산을 타고 본격적으로 태백산맥 산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해안의 큰길은 미군 전폭기의 폭격으로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험악한 태백산맥 준령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10명 정도의 여성 대원들은 힘들다는 내색 없이 하루 50킬로미터의 강행군을 거의 초인적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많은 대원들이 길게 줄을 지어 무작정 걷고 있어서 이탈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길가에 주저앉아버리거나 용변을 본다며 대열을 벗어나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게 지부장님과 관계가 있다고요……?”

우리 조상님들은 대대로 남원면에서 살았다네. 조상님들이 언제쯤 제주도에 들어갔고 남원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너무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우리 조상들은 돌담을 두르고 흙냄새가 나는 초가집에서 살았어. 여름철에는 농사꾼이고 겨울이 되면 바다에서 어민으로 살았지. 할머니는 물허벅(항아리)을 담은 구덕(바구니)을 지고 다녔지. 쌀이 엄청 귀했으니까 조밥과 감자가 주식이었어. 가족들은 낭푼에 담은 지슬밥에 마농지뿐인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를 했어. 시골 변소는 돼지우리를 겸하고 있으니까 사람의 똥이 돼지의 사료가 되고 또 그 돼지를 인간이 먹는 셈인데 그 돼지의 생김새가 멧돼지와 비슷하니까 흑돼지라고 했어.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고기가 쫀득쫀득하고 기름기가 적어서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해. 그래서 소주 안주로는 최고라고 하셨지.

194811월 남원 지구를 관할하던 국군 토벌대가 위귀, 수망, 한남리를 깨끗하게 소탕하고 이어서 태흥리를 불태웠지. 마을 주민들을 동네 어귀 빈 공터에 모아놓고 지금 곧 철수하지 않는 자는 빨갱이의 협력자로 간주하여 즉결처분한다라고 선포하고 나서 그냥 머뭇거리는 사이 마을에 석유를 들이부어서 전부 깡그리 불태워버렸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총을 쏘았어.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거지.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했으니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어.

그때 아무 죄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등 모두 몰살당했다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되는 거지.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목포에서 졸업반 고등학생이었어. 철없는 어린 학생이 무얼 알았겠는가. 이데올로기니…… 공산주의가 뭐고 민주주의가 뭔지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 그런데 부모님과 누나가 죽고 자신은 졸지에 빨갱이 자식이 되었으니 갈 길은 하나밖에 없었어. 모진 운명에 의해 내몰렸단 말이지. 그때 제 발로 걸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네.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한 거지. 어쩔 수 없었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리고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인민군이 퇴각할 때 천신만고 끝에 함께 북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 그런데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계속 조금씩 피를 흘렸는데 함께 북으로 후퇴하던 어떤 유격대 여인이 자기 속옷을 뜯어서 상처를 동여매 주면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는데 그분이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지.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를 조금 절었기 때문에 인민군에 편입돼서 복무할 수 없었지. 그래서 평양의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신원고등중학교 사회분과 교원으로 복무하다가 부교장을 끝으로 퇴임하셨지.”

지부장님 역시 빨치산 가족 출신이군요.”

그 덕분에 금성정치군사대학에 갈 수 있었지. 그 대학은 원래 남조선 혁명가들을 양성하는 학교 아니었는가.”

김일성종합대학 못지않게 좋은 대학이지요.”

우리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있었다네. 남원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의 시신을 수습해서 안장하는 것이었네. 그놈들이 감쪽같이 암매장을 해버렸지. 유해를 발굴해서 봉안을 하고 조상 제사를 지내야만 자손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원혼들의 안식을 위해서 저승으로 천도하는 시왕 맞이 굿을 한번 치러야 할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건 내가 완수해야 할 평생의 과업이 되었지. 아버지는 아름다운 섬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네.”

그건 남북이 통일되거나…… 최소한 평화가 정착되어서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로워질 때나 가능하겠군요.”

장 동무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소. 지금 대남 침투는 휴전선을 통한 육상 침투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남쪽 감시 장비가 너무 좋아요. 그러니 해상 침투가 중요한데 그 지역은 서해안 일대요. 서해안에는 중국 어선들이 많이 있으니까 거기에 섞여 있다가 침투하는 거 아니겠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들은 이미 늙어가고 있소. 걔들은 전혀 쓸모 없는 내용이 엉성한 정보만 보내오고 있어. 그렇다고 중단시킬 수도 없단 말이야. 걔들 사기도 생각해야 하니까. 은퇴할 때가 된 거지. 그리고 힘들여서 구축한 공작망은 서서히 와해되어 사라져버렸어. 그래서 새로운 피가 필요한 거야. 흔들리지 않는 투철한 사상을 갖고 있는 참신한 인물을 찾아야 하오. 출신성분이 중요하지. 그리고 사회성분도 충분히 검토해야 하오. 그래서 포섭이 되면 철저히 세뇌 공작을 하는 거지.”

세뇌 공작은 정말 중요합니다. 포섭을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인 거죠.”

지금도 제2전선이나 통일전선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오. 용도 폐기된 게 아니란 말이지. 인민해방전쟁에는 그거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한 거야. 그래서 각계각층에 침투하는 게 중요하지. 첫째는 철딱서니 없이 날뛰는 약해빠진 대학생들이 중요해요. 지금은 학생운동이 도대체 시들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거요. 역시 젊은 혈기는 말릴 수가 없으니까…… 원래 혁명을 위해서는 학생, 농민, 노동자가 중요한데 지금 남한에서는 농민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농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급감했으니 농촌에는 혁명에는 쓸모없는 늙은이밖에 없단 말이야. 그래서 좌파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김일성 주석님의 갓 끈 전술과도 연관되어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말이요…… 갓은 한쪽 끈만 끊어져도 떨어져 나간단 말이요. 그러니까 한쪽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면 전체가 무너지는 거요.”

현재…… 남쪽은 자본주의가 번성하여 나름대로 잘 살고 있으니까요……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양극화는 필연적이고 그래서 빈부격차는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극소수의 중산층은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점점 구조화된 심각한 불평등 사회로 변하게 되는 거요. 그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한계인 거지. 그러니까 불평등이 커질수록 여유와 관대함은 사라지게 되고 비윤리적이 되는 거야. 그 과정에서 중산층이 옅어지면서 결국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되는 거지. 중산층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거요. 그러면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가 다시 일어날 거니까. 공산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어. 절대로 죽을 수 없지. 모두가 가난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소수만 계속 부자가 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오.”

남한 사회는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징조가 벌써부터 조금씩 보이고 있긴 합니다.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한계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동무가 잘 알고 있군…… 다시 말하면…… 수많은 프롤레타리아가 구조적으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거지. 먹고살 만하다고 해서 불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요. 상대적 박탈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고 했지 않소. 그들 불만 세력이 노동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한단 말이지. 우리는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비현실적이니까. 그래서 남한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만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면 되는 거지. 현실적으로 볼 때 그들이 갈 곳은 노동조합밖에 없어요. 강력한 노조를 중심으로 해서 투쟁하고 세력이 커지면 정치세력화하는 거지. 그렇지만 그것도 귀족노조가 아니라 모든 조합원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평조합원이 주도하는 조합이 중요해요. 그런 조합을 주목해야 한단 말이오. 노동자 계급이야말로 남한 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 영도 계급이고 혁명주력부대의 핵심 계급이니까.

현재 상황은 참으로 암울하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오. 우리 솔직합시다. 공화국은 완전히 궁지에 몰려있으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경제가 갈수록 엉망진창이니까 강성대국은 요원하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근거가 필요하단 말이오. 우선 지하에서 활동하는 비밀혁명조직이 필요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오. 첫술에 배부르겠소.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옛날 통일혁명당 정도의 정당이 남한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있소.”

남한의 노동운동은 전태일의 분신 자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고나서야 지식인과 의식있는 대학생들이 노동자와 사회 밑바닥 빈민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부터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노조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876월 민주항쟁은 억눌려있던 노동자들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에 활화산 같은 위대한 투쟁으로 이어졌지요. 그런 대투쟁은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이고 자발적 각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은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사사건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립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IMF 이후 새롭게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죠. 이제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서로 돕기는커녕……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나부터 살자라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삿대질을 하고 있어요. 정규직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의 흑인들처럼 아주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깨우치고 일으켜 세워야 하오. 비정규직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오. ‘이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옳지 않아요. 정당하지 않단 말입니다. 그들은 충분히 권리를 갖고서 그걸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가들이 양쪽을 분리시켜서 서로 싸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의지박약이고 겁쟁이에 불과합니다. 노예이고 바보입니다. 너희들끼리 똘똘 뭉쳐라! 압제자들을 맹렬히 증오하고 그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압제자가 누구입니까! 자본가들이고! 정규직이고! 정규직 노조아닌가요!”

어떤 폭발적인 계기가 필요할 겁니다. 언젠가는 비정규직들이 똘똘 뭉치게 되겠지요.인재 발굴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포섭 대상이 될 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했거나 강남 출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그들과 만나보면 그 순간부터 부르주아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것들은 뺀질이이니까 도저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좌파가 쓸모없다고……?”

강남 좌파의 실체를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들 모순투성이예요. 그들은 머릿속과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에서만 급진적인 좌파이고 실제 삶에서는 부르주아 중에서도 상급 부르주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겉으로 내세우는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성향은 좌파 같지만 소득 수준과 라이프 스타일은 잘사는 강남 부르주아와 똑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진보를 외치고 실제 행동은 물질적 욕망에 따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막강한 학벌로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습니다. 남한 사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학벌 사회입니다. 모든 정치 경제적, 사회적 권력은 일류 대학의 학연과 얽혀있습니다. 심지어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90년대의 시민운동의 주도자들 역시 학연으로 강력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정관계에 진출해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강한 학벌 자본을 자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력한 인맥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위선자들……

그 사람들은 잘난 척을 잘 하는 자기중심주의자들이죠. 누구보다 자신이 중요해요. 그래서 자신들이 마치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완전히 이중인격자이고 위선자 중에서도 최고의 위선자들이죠. 우리 입장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잔머리를 잘 굴립니다. 배신자가 될 소질이 다분하지요. 언제든지 상황이 급변하면 곧바로 배신할 겁니다.”

들어보니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요. 가뭄에 콩 나듯이 그렇지 않은 인간들도 있을 거 아니요?”

기대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만나보면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걸 알게나. 옛날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동아리들에는 동성애가 만연했다네. 지금은 시대가 변하였으니 더 하겠지. 그래서 소련 KGB는 거기서 많은 요원을 뽑았다고 하지. 지금 남한 사회는 호모가 공공연히 유행하고 있는데…… 정말 말세이긴 하지. 우리는 역겹긴 하지만 그런 호모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네. 걔들은 좋은 포섭 대상이 될 수 있어.”

남한 사회는 개방 사회이니까 그런 지저분한 호모들까지 날뛰고 있는 거지요.”

북으로 대동 월북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커요. 그리고 효과도 없어요. 위대한 수령님께 무릎을 꿇고 맹세한 인간들도 결국 배반하지 않았소. 포섭이 되면 중국으로 6개월이건 1년이건 장기간 어학연수를 하도록 하시오. 중국의 비밀 아지트에서 감쪽같이 교육을 시키고 나서 노동당에 정식 가입시키는 거요. 그러면 귀국시킬 수 있을 거요.”

저도 그 방향으로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나는 사생활에 관해서는 한 번도 참견한 일이 없었소. 그리고 말이야…… 이건 중대한 사항인데…… 장 동무가 어떤 경우에도 북으로 송환되면 단호히 거절하겠다는 말도 명심하고 있소. 나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오.”

고맙습니다. 저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깊이 물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북에 가서 사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저는 죽는 편이 났습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말할 필요는 없네.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았으니까 항상 사람을 의심하는 성향이 있어서 대화 중에도 말 한마디 한마디 신중을 기했소. 그렇지만 동무에게만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탁 터놓을 수 있었지.

여자 문제는 내가 간섭할 일이 절대 아니오. 여자와 남자는…… 불가피해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니까. 그러나 너무 깊이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소. 내 말은 성도착증 같은 걸 의미하오. 거기에 깊이 빠지면 성의 노예가 되니까 실패할 수 있단 말이오.”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 만나는 여자가 있기는 합니다. 건강한 남자가 어떻게 여자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욕구를 해소해야 하니까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부장은 칭따오 맥주를 쭉 들이켰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중국식 식당의 별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이제는 마른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하다. 지부장이 천장으로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에는 그 나름의 많은 고뇌와 상념들이 녹아 있었다. 칭따오 맥주 큰 병 다섯 병중에서 아직 두 병이 남아있다. 식사를 할 때는 중국 고량주를 마셨다. 지부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대화를 주도했고 동무는 공손한 태도를 흐트러지지 않은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지부장이 말했다. “자 자…… 다시 한번 진짜 건배를 하자고. 기분 좋은 날이야.”

건배사를 말씀하시지요.”

당연하지. 그렇고말고. 공화국 만세! 공산주의 만세!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역시 맥주는 칭따오야.”

그러고 나서 둘은 단숨에 들이켰고 장 동무가 다시 잔을 채웠다.

난들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할 수가 없지. 남자는 언제든지 여자한테 이끌리게 되어있어요. 여자도 남자에게 이끌리고. 그렇지 않소. 그런데 북경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단 말이야. 숨바꼭질할 수밖에 없어.”

중국 여자들 별로일걸요……?”

그렇지. 나긋나긋하지는 않아. 중국 음식이건 중국 술이건 이제는 지겨워. 너무 느끼하단 말이지. 역시 평양 음식이 최고야.”

저는 다행스럽게도 성도착증 증세는 없습니다. 호모도 아닙니다.”

중정의 대공 요원들이나 치안본부 그것들의 동태는 어때요? 우리는 옛날처럼 무선 교신을 하지 않으니까 무선 감청 장치는 이제 쓸모가 없겠지.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 우리는…… 아주 조잡한 난수표를 사용했는데 중정의 대공 요원들은 그런 난수표쯤은 식은 죽 먹듯이 쉽게 해독했단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옛날 일이지만 우리가 치명적으로 실수한 거야. 중대한 지시 사항을 암호화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거지. 암호 요원이 너무 형편없이 멍청했거나 태만했거나 아니면 두 개가 합해져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 1968117일 오후 10시 우리 124부대 소속 31명의 동지들이 군사분계선 철조망을 절단하고 남측으로 내려왔지. 18일 새벽 삼봉산에 도착해서 1박을 했고 19일 오후 나무를 하러 온 우씨 형제들을 잡은 거야. 동지들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본부에 암호문을 보내서 물어보았으나 돌아온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어 회의 끝에 이들을 풀어줬어. 어떻게 그 중요한 작전에서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었단 말인가. 그런 실수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어. 어쨌거나 암호문을 해독할 수 없으니까 회의 끝에 풀어줬는데 걔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작전은 실패했어. 그때 냉정했어야 하는데 그 어린 애들이 너무 불쌍해서 인간적으로 동정을 한 거요. 그래서 손목에 차고 있던 일제 시계까지 풀어주면서 살려준 게 화근이 된 거지. 31명 중 29명이 사살되고 한 명은 북으로 귀환했지만 김신조는 남쪽으로 투항했지. 그때 해독되지 못한 암호문은 원대 복귀였어. 암호문을 해독했더라면 전원 무사히 철수했을 것이고 29명이나 되는 귀중한 목숨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어.”

“IS 같은 이슬람 테러조직도 감청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를 이용했습니다. 인터넷 번호와 암호책은 매번 적절히 교체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메일로 교신할 때 썼던 은어들은 너무 구식입니다. 그때는 좌파세력은 좌회사’, 통일전선체는 통회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사장님으로 불렀고 반미투쟁은 수출, 접선을 생일파티, 활동중지를 입원치료, 체포를 급성장염등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조국은 ‘East Place’, 남조선은 ‘NamKyong’, 중국은 ‘Second-hand market’, 라오스는 ‘Noodle factory’, 홍콩은 ‘Read Flower Garden’으로 하였지요. 우리는 남한에서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보통 용어를 쓰는데 그것도 몇 개월 단위로 교체합니다.

중국과 남조선 사이에 개인이나 회사들 간에 하루에도 수만 번씩 메시지가 오가니까 그걸 모두 감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직접 만나 처리하니까 더욱 안전합니다. 국정원이 아무리 눈에 불을 켜도 별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소. 우리 1997년으로 되돌아 가봅시다. 바둑에서 복기하는 것처럼 말이요. 장 동무는 최고수로 소문이 났지. 아마 5단쯤 될 텐데…… 나는 바둑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1급 수준이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바둑의 묘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요즈음은 도대체 둘 기회가 없어요. 바둑이란 게 참으로 묘미가 있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정신적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주말이면 바둑을 두던 그 옛날 북경 시절이 그립군요. 지부장님은 승부욕이 강해서 꼭 내기를 고집하셨고 저도 오기로 절대로 져주지 않았지요.”

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꽤 돈을 잃었지.”

우리가 언제 다시 한가하게 바둑을 둘 기회가 있을까요?”

글쎄 말이야…… 아무튼 말이야…… 1997년 그때 나는 노동당 작전부 작전 1과장으로 있으면서 쥐 박멸 작전을 지휘했소. 그때는 그 영감태기가 남쪽으로 내려갔으니까 온통 난리가 났지. 공화국 전체가 뒤숭숭했으니까.

그 당시 내 직속 상관으로 대남공작을 총괄했던 부부장 동지는 진즉 은퇴해서 할아버지가 되었지. 지금은 대동강변 아파트에 살면서 대동강에서 낚시도 하고 손주를 데리고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소. 그해 4월 영감태기가 서울에 도착했지. 배신자 주제에 영웅 취급을 받은 거야. 우리는 극히 민감한 정보가 남한 당국이나 미국 CIA에 넘어갈지 모른다고 노심초사했어.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극비 정보 말이야. 물론 그 당시 그런 극비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었지만 혹시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서 뭔가 캐낼 수도 있었으니까.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었던 거요. 직접 그를 처치할 수는 없었지. 그때 안기부가 내곡동 안가에서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었지 않소. 걔들이 내곡동으로 이사한 게 1995년인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초호화판 최신식 건물을 지은 거요. 남산 근처에 있던 부장 공관도 그리로 옮겨갔고 남산 별관에 있던 온갖 고문 기구들도 가지고 갔을 거요. 그걸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먼지를 털어내고 창고에서 꺼낼 때가 있겠지. 세상은 계속적으로 돌고 도는 거요.”

저는 지금까지도 그 작전의 깊은 내막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남에 숨어 사는 그 쥐를 대신 처리하기로 결정했지. 장 동무는 이제서야 그 쥐를 처리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될 거요.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겠소.

그 인간은 우리 명부에서 이름마저 지워버렸다네. 그냥 쥐야. 그 이름도 아깝지. 악마 중의 악마이고, 배신자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배신자이니까.

본부에서는 공작원들을 훈련시킬 때 이 사건에 대해서 이미 교육을 했소. 공화국은 배신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어쨌거나 쥐가 박살 난 사실을 영감태기가 알 필요가 있었어요. 그 당시 작전의 경과는 장 동무가 어느 정도 관여했으니까 조금은 알고 있을 거요. 장 동무가 자신이 맡았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시오. 그때는 초창기여서 장 동무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임무만 맡긴 거요.”

저는 그 당시 한국으로 들어와서 본사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본사는 강남역 부근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 회사의 초대 북경 지사장이었지만 그때는 직원도 서너 명에 불과했고 아주 초라했지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당시 임무가 성남의 빌라로 두 사람의 공작원을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핑계를 대고 회사 영업용 차량을 빌렸지요. 그리고 오후 6시경 안산시 시화방조제 북쪽 오이도 활어판매장 부근에서 만나 함께 간단한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교환한 암호는 잊어버렸습니다. 벌써 13년 전 일 아닙니까. 그때 그들은 누굴 만날 일이 있다. 중요한 물건을 전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고첩과 접선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완전히 남한 사람처럼 행세했습니다. 우리의 적구화 교육이 아주 훌륭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전날 태안의 안면도 해안으로 침투해서 서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안산에서 성남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승용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지요. 경원대학교 근처 빌라들이 늘어선 뒷골목 부근에서 내렸습니다. 주위가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6월이었지만 밤이 되니까 약간 추웠는데 그날 밤 초생 달이 떴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함께 한 시간 정도 대기했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렇소. 그때 장 동무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한 거요. 그 암호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한쪽은 벌써 봄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이고, 다른 쪽은 그러게 말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지요.’이었어. 그건 그렇고 그들은 소음기가 달린 총을 사용했소. 빌라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나서 다른 요원이 그들을 픽업해서 강화도로 데려왔고 그날 밤 강화도 해안에서 공작선에 오를 수 있었소.

그분은 원래 이북 출신이었소.

성남에서 서울을 거쳐 김포와 강화도 북쪽 해안까지 도로를 연습 삼아 열 번 이상 달렸기 때문에 그쪽 지리에 아주 훤했소. 옛날에 영업용 택시기사도 했기 때문에 운전을 잘 했으니까 아마 눈감고도 달릴 수 있었을 거요.

6·25 전쟁 때 소년병으로 참전했다가 휴전회담 당시 남쪽의 꼬임에 빠져 반공포로가 되어서 남한에 남은 거요. 그렇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한에서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소. 온갖 고생을 하였지. 두 번 결혼했다가 두 번 다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어.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북쪽에 가족이 살아있었으니까 고향을 몹시 그리워했소. 그래서 쉽게 포섭이 된 거지.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

그 후 중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왔다가 압록강을 건넜어. 지금은 고향인 신의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주 잘살고 있어요.”

지금 돌이켜보니까 정말 전광석화와 같은 작전이었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네.”

즉사해서 좋았을 것입니다. 그 무엇도 생각할 틈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하군요. 작은 구멍에 감쪽같이 숨어있는 그 쥐를 어떻게 찾아냈나요? 틀림없이 안기부에서 애지중지 보호하고 있었을 텐데요……

당신의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지.”

그는 안기부 방첩과에서 전향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엄격한 조사를 받았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거쳤고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서도 썼다. 그렇게 해서 이중간첩이 되었다. 새로 주민등록증과 그 당시 안기부 산하 무슨 연구소의 연구원 자격으로 의료보험증을 발급받았고, 운전면허증은 정식 시험을 치르고 나서 발급받았다. 그리고 성형수술을 했다. 한국인치고는 매부리코처럼 너무 높은 코를 조금 낮추고 쌍꺼풀 수술을 했으며 사이가 벌어져서 금방 태가 나는 앞니 두 개를 뽑아내고 인공치아를 심었다. 항상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을 하여 길게 기르고 다니면서 수십 개의 안경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썼다. 그리고 가끔 여러 종류의 모자를 쓰고 주로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남한의 보통 중년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안기부의 비밀 안가에서 칙사대접을 받았다. 특급 호텔만큼 깨끗하고 화려한 침실에 자면서 매끼 그가 원하는 대로 식사를 했으며 어떤 책이든 마음대로 골라서 독서를 하고 TV 시청을 했으며 가끔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안내원을 자처한 감시원이 따라나서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는 1년여쯤 지나자 싫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밖으로 옮겨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도저히 갑갑해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은 자유를 찾아서…… 해방되기 위해서…… 전향한 것이지 돼지우리에 갇혀 있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전담한 직원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며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건 본부 고위층의 의견이란 것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완강했다. 자살 소동까지 벌인 것이다. 그는 병실에서 깨어나자 마자 도대체 말이죠…… 제가 스스로 죽겠다는데 왜 죽지 못하게 하나요? 이건 제 고유의 권리란 말입니다.’라고 항변했는데, 정말 죽고자 하는 진짜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자살 의도가 없었는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보여주기식이었는지 분간하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성남시 태평동에 대지 50, 건평 35평의 단층 단독 주택을 마련해서 살게 하였다. 그는 그 주택에 도청 장치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호신용 권총을 요구했지만 권총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안기부에서 주선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파출부로 근무했다. 그 아주머니는 정기적으로 그의 동태를 보고했고 가끔 그가 연구소로 출근한 후에는 안기부 요원들이 그의 집을 비밀리에 방문해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없는지 수색을 하고 갔다.

그는 아주머니에게 단단히 지시했다. 절대로 소포를 받지 말고 무조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하라고. 자기한테는 소포를 보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폭탄이 장치된 소포가 배달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바퀴벌레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사를 갈 것을 고집하면서 이번에는 아파트를 요구했다. 그리고 감시받기 싫으니까 아주머니 없이 혼자서 조용히 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 출입하는 주민들이 많아 보안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4층 빌라로 옮기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당시 북쪽 대남공작 라인의 조직 체계와 지휘관들, 중국 주재 북한 공작원들의 신상 정보 등을 제공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특히 국정원이 애타게 알고 싶어 하는 남한에 뿌리박혀있는 고정 간첩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므로 그의 효용성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다. 첩보 기관은 어느 조직이든 자족적이고 자체 논리로 움직인다. 이중간첩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잔인하게 버려질 수도 있다. 정보기관 입장에서는 당초 약속한 대로 그에게 새로운 신분과 살 곳을 마련해주고 보살피기는 하지만 때로는 적의 손에 죽게 하는 것이 편리할 때도 있다. 언제든지 그쪽 소행으로 발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애를 태웠다네. 그 자식이 계속 거기 안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지. 거기는 언감생심 우리가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 그런데 걔가 거기를 떠나 어디론가 떠났는데 근무는 연구소에서 계속한다고 했어. 그게 몇 단계를 거쳐서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온 거지. 우리 세포들은 서로 존재를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부터 우리 요원 두 명이 걔 출퇴근 시간에 맞춰 부근에서 잠복 근무를 했었지. 우리는 연구소 애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음식점이나 술집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 그리고 말이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쥐의 동선을 찾아낸 거야. 아무리 성형수술을 하고 변장을 해도 소용없었지. 키가 175센티미터인데 키를 키우거나 줄이거나 할 수는 없었지. 그리고 그 인간은 조금 독특한 걸음걸이를 걷는단 말이야. 아주 거만한 모습이지……

그는 타자를 배신하고 자기 자신을 반역한 것이다. 지독한 스트레스와 광기에 가까운 고양된 감정의 힘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그의 입술은 아이러니한 체념과 가벼운 비웃음을 띠고 있다. 그는 정신적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 남과 북으로부터 이중으로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계속 그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고 언젠가는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이 언제든지 그를 찾아내서 총을 발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 강박증에 시달렸고 불면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효과가 아주 좋다는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정신과 의사는 최후의 처방으로 충격요법을 제시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때 성남의 거리에서 마주쳤던 두 명의 젊은 남자는 누구였을까. 눈초리가 매서웠지 않는가. 건장한 걸 보니까 틀림없이 북에서 내려왔을 거야. 나를 찾고 있다고. 너무 지루한 일상, 좆같이 더러운 내 인생. 가끔 총에 맞아 죽는 악몽을 꾸고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잠에서 깼다.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가 울부짖었다. “나도 인간이라구. 어떤 후회도 뉘우침도 없는 게 아냐. 잔인한 짐승이 아니라니까. 너희들은 날 이용해 먹은 거야! 날강도 같은 놈들! 남과 북이 다 똑같다고! 배신자들 같으니라구! 나는 북에서 공작선을 내려보낼 때 2~3명만 내려올 줄로 알았지. 그들이 상륙하자마자 생포될 것이고 그러면 내가 그들을 잘 설득해서 남쪽에서 정착해 살도록 할 작정이었어. 그렇게 약속이 되었단 말이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탄 잠수정이 내려왔느냐 말이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렇게 큰 배를 보내면 남쪽 해군들이 금방 탐지하고 말지. 그들이 몰살당한 게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죄가 없다고……

어느 날 저녁 밤늦게 방탄 조끼를 입고 등산용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검정 군화를 신은 괴한 두 명이 빌라의 옥상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왔다. 그들은 전문가답게 아주 능숙한 솜씨로 거실 창문을 깨고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그때 쥐는 거실 소파에 망연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가 창밖을 내다보자 어둠이 꿈틀거리면서 인간의 형체가 그 속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무시무시한 공포에 질려서 몸이 굳어버렸다.

쥐가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지. 오랜만에 보는 소음 총이군. 한 발만 머리통에 쏘라구. 그러면 충분하니까.” 그들은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처음 한 발의 총알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을 때 죽음이 임박하여 머릿속에 갇혀 있던 회색 안개가 걷히면서 아주 짧은 찰나적 순간에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았다. 곧이어 괴한들은 총을 난사하고 그대로 빠져나갔다.

그는 즉사했다.

우리 요원들이 들어갔을 때는 이미 이틀 전에 총상으로 죽어있었어. 거실은 끔찍한 피바다였다고 해. 그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니까 아마 기념으로 죽은 시체에다가 몇 발을 갈기고 나왔어. 방아쇠를 당기는 짜릿한 손맛을 느꼈을 거라고. 그리고 증거품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가지고 돌아왔지. 사실대로 정확하게 보고했어.”

자살했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자살했다면 그 자리에 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총은 없었어. 그리고 자살자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여러 발의 총을 쏠 수가 없어.”

그럼 누구의 소행……?”

뻔하지 않은가. 걔들이 한 거야. 쥐가…… 배신자 주제에 염치도 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단 말이오. 그때는 이용가치가 없으니까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는데 제 분수를 모르고…… 유흥가에서 돈을 물 쓰듯 했고 술이 만취해서는 온갖 행패를 부렸어. 여자를 소개해 주면 폭력을 일삼고 학대하니까 도망가버렸소. 더군다나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겠다고 생떼를 쓰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골치를 앓고 있었던 거지.”

그렇다고……

생각해 보라고…… 걔가 말이야 계속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절대로 보내줄 수 없지. 그런데 밀항이라도 해서 일본으로 망명하거나 일본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찾아가서 망명을 하면 아주 골치 아플 것 아닌가.

또는 말이야…… 변신의 천재이니까 위조 여권을 만들어서 우선 동남아시아로 튈 수도 있었을 거야. 걔들 옛날 이수근의 위장 탈출 사건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었을 거라고. 그때 이수근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일단 국외로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거든.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걸 공개했단 말인가요?”

그 당시 안기부는 당분간 극비에 부치면서 쉬쉬하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간단하게 발표했어. 북에서 망명한 고위 인사가 두 명의 북한 공작원에 의해 서울의 모처에서 암살되었다고 했어. 그러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한 결과 시신에서 구경이 다른 두 종류의 총알이 나왔고, 모두 열한 발의 총알을 맞았는데 가슴에 아홉 발, 목에 두 발을 맞았다고 했어. 그들은 그걸 북한의 소행으로 돌리면서 북한의 테러리즘을 부각시킨 거야.”

그럼…… 우리 요원들은 코에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이군요.”

그런 셈이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지. 우리는 그걸 교육용으로 활용했어. 우리 요원이 한 걸로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은 거야. 그리고 걔들은 북한 소행으로 돌렸으니까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렇게 단단했던 사람이 망가진 게 말입니다.”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어. 그도 인간인데 그러한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소. 쥐란 동물은 아주 영리하고 신경이 예민하지. 본능적인 감각으로 위험을 회피할 줄 아는데 그놈은 쥐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그를 납치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북으로 데리고 가서 모든 공작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하려고 했지만…… 너무 복잡해서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네.

요점은 그거요. 이번에도 장 동무는 직접 남산1호와 접선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거요.”

잘 알겠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임무 같습니다.”

그걸 아시오. 장 동무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존재요. 우리 조직의 핵심이란 말이요. 우리 공작에서 생명선인 서해안을 책임지고 있지 않소. 그래서 목숨이 위태로운 아주 위험한 임무는 줄 수 없는 거요.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영감태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시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인간이 살고있는 논현동 집과 사무실, 동선 파악은 잘 되고 있소?”

무장한 경호원이 2~3명이 따라다니고 집에서도 함께 기거합니다. 담장에는 물론이고 사방에 고성능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창문에는 방탄 유리가 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여기저기에 틀림없이 도청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경비가 상당히 심합니다.”

영감태기가 처음 내려갔을 때 성남에 숨어 있던 그 쥐를 아주 잘 처리했어. 감쪽같았으니까 완벽했단 말이지. 그리고 무사히 귀환해서 영웅 대접을 받았소.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단 말이지. 경호원들이 붙어있어서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소.”

경호원을 따돌리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 임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것이지. 그렇지않소…… 타이머로 조종되는 폭탄은 어떻소? 소형 폭탄을 침대 밑에 설치해서 원격 조종으로 처리하는 거지. 그렇지만 조잡한 사제 폭탄은 안되오.”

만능 기술자가 있기는 합니다. 틀림없이 폭탄도 잘 처리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걸 설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게…… 우리는 소형 스마트 폭탄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배터리를 이용해서 타이머 설치가 가능한 부비트랩인데 폭발력이 너무 강렬합니다. 아마 이층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겁니다. 그리고 소리도 엄청날 겁니다. 전쟁이라도 터진 줄 알겠지요.”

그건 불가능하단 말이지……

역시 집 밖에서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밤에 집 안으로 침투가 가능한지 여부와 집 밖에서 처리하는 게 좋은지는 면밀히 검토하겠습니다. 그걸 남산1호에게 주지시키겠습니다. 동선은 충분히 파악해 두었습니다. 자신이 설립한 탈북자동지회사무실에 일주일에 두세 번 나가고 가끔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라는 학회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출판기념회나 강연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지요. 그 양반은 탈북자동지회 회원들이면 누구든지 동지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동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자가 가만히 칩거하고 있으면 그를 제거할 필요가 없단 말이지. 잘난 체하고 강연을 하고 다니니까. 최근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는 대외 활동을 강화하고 있소. 우리는 혹시나 망명정부를 수립하려고 그러는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지.

눈엣가시 같은 존재야.

우리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도록 경고를 보냈네. 경고를 하기 위해서 쥐를 처단하지 않았는가. 협박 소포를 보내기도 했지. 20043월 그가 회장으로 있던 탈북자동지회 사무실로 확실하게 죽여버리겠다.’는 문구가 적힌 영정사진 크기의 사진과 함께 30센티미터 길이의 식칼을 함께 배달했지. 200612월에는 자유북한방송 사무실로 그를 겨냥한 소포를 보냈는데 소포 안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얼룩진 사진이 35센티미터 길이의 손도끼와 함께 들어있었고, 동봉된 A4 한 장짜리 협박문에는 너는 쓰레기이다. 그 입을 다물어라. 배신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글이 적혀있었네. 20075월에는 하얀색 가루가 들어있는 봉투를 소포로 보냈었네. 그 하얀색 가루는 그냥 가루였어. 그게 탄저균이나 리신이라는 독성물질이었다면 그는 그때 죽었을 거야.

그런데 그 작자는 그걸 장난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단순한 협박으로 보는 거야. 아무리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처치할 수밖에 없는 거라네. 도대체…… 본때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 영감태기는 눈치가 전혀 없어요. 남조선 정부는 그가 쓸모가 없어요. 아무리 캐봐도 쓸만한 정보가 없는 거야. 국가적 체면이 있으니까 억지로 보호하고 있어. 부담만 되는 거지. 그러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까불고 발악을 하고 있는 거요. 추악한 민족 반역자! 늙다리 정신병자!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사무실이나 강연회장에서 말입니다. 사무실의 경우 경호원을 따돌리고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처리할 수도 있고 사무실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서 졸고 있을 때 감쪽같이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화장실에 간다면 거기까지 경호원이 따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강연회장에서도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도 가능합니다.”

좋소. 그건 장 동무한테 일임하겠소. 무기는 뭐가 있소?”

중국이 특수 부대용으로 만든 67식 소음 권총, 독일제 발터 권총, 남한의 대우DP51 권총, 미군 장교용 권총, 우리 공화국에서 만든 1970년식 권총 등이 있습니다.”

다른 무기는?”

구식 독침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볼펜형 독침인데 일반인들이 청산가리로 알고 있는 시안화칼륨에 비해서 독성이 몇 배나 강력한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극물이 들어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작동할런지 성능을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강화도와 태안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벨기에 돌격소총과 체코제 기관단총, 소련제 최신형 AK 카빈과 수류탄 등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체코제가 성능이 좋습니다. 크기에 비해 가볍고 명중률도 가장 좋습니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매일 손질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잘 들으시오. 역시 권총을 사용해야 하오. 공화국의 잔인한 힘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권총이어야만 하오. 독침은 녀자애들이나 쓰는 거지. 구리 총알이 그자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대정맥, 허파, 심장, 간을 찢어놓으면서 피가 쏟아지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될 거요. 푹 쓰러져서 죽는 거지.

그렇지만 북한제 권총은 안되오. 너무 노골적이니까. 귀중한 총알을 아껴야 하오. 꼭 두 발만 주시오. 더 이상은 안 된단 말이오.”

잘 이해가 안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남산1호는 명사수요. 그가 목표를 잡았다면 딱 한 발이면 되지. 그래도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여분으로 한 발 더 주는 거요.

만약 말이오…… 비상한 상황에서 당황하여 난사해서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요. 함부로 총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그러면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지. 그건 본부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체포가 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총알은 머리 아니면 목구멍에 정통으로 박힐 거니까 비명을 지를 수도 없어요.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도망칠거고 경호원들은 졸고 있다가 뒤늦게 나타나서 당황하고 허둥댈 거야. 비상이 걸리고 현장을 봉쇄하고 경찰차, 구급차가 출동하겠지.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 응급실로 달릴 쯤에는 봉화1호는 귀신처럼 날쌔게 움직여서 벌써 1킬로 쯤은 달아날 거야.”

저는 만약의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하오. 독약 앰플을 건네주시오. 너무 잔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가 운 좋게 현장에서 빠져나와 도망친다고 해도 말이오…… 남조선은 너무 좁아. 경찰의 기동력이나 국정원 조직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잘못하면 붙잡히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모든 걸 불 수도 있겠지. 그도 연약한 인간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끝까지 도망쳐서 살아남으라고 하시오. 그러면 우리가 공작선을 내려보내 데려올 것이오. 본부는 구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요. 그건 우리들 공작원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야. 자신들이 본부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큰 신뢰감을 가지게 될 거야. 만약 마지막 궁지에 몰리면 약을 삼키라고 하시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가 살아서 체포되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공화국은 감당할 수가 없어요. 최고 지도자 동지도 노발대발할 거라고. 그게 말이야, 앰플을 삼키고 죽으면 해결되는 거지. 우리는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고 공화국과는 관계가 없다고 계속 부인할 거고 그러면 시간이 흘러서 가면 결국 묻히는 거지.”

그가 앰플을 보면 동요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 겁니다. 앰플을 받는 순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죠. 국정원이나 하나원 교육 과정에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오면서 보고 들은 게 많았으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누구나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어쩔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본부는 남산1호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고 있소. 정직하고 고지식해서 어떤 경우에도 명령을 어길 인간이 아니야. 그는 공화국 최고 엘리트 공작원이오. 머리가 아주 뛰어나지. 수재인지…… 천재인지…… 어렸을 적부터 무슨 시험이건 시험만 보면 무조건 일등을 했어. 독서량도 상당하고. 그는 해낼 수 있어. 그리고 사상 교육이 철저해요. 정신력도 강하고…… 출신성분이나 사회성분 역시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어.

딱 한 가지 흠이 있는데 술을 좋아한다는 거요. 말술이란 말이요. 북한에서 제일 좋은 술인 40도가 넘는 양덕술을 두 병이나 마셔도 끄떡 없단 말이지.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선 안 된다고 주의를 주시오. 절대로……

지부장님…… 목숨을 건 일인데…… 앰플을 건네주는 것은 꺼려지네요.”

선택의 여지는 없네. 이렇게 말하게. ‘최고 지도자 동지에게 충성을 바치라고그리고 공화국의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해. 그가 죽으면 영웅 훈장의 혜택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간다고.”

잘 알겠습니다. 저로서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가 앰플을 삼키지 않으면 문제는 너무 커지는 거야.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버마의 아웅산 사건을 돌아보라고. 그때 강민철이가 그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그 사건은 공화국과는 관계가 없다고 끝까지 부인할 수 있었어.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지만. 그런데 그자가 살아서 모든 걸 털어놨단 말이야. 그 바람에 우리의 가장 친근한 우방이었던 버마와는 단교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지. 그리고 또 있어. 대한항공 KAL기 폭파 작전도 김현희가 현장에서 죽었으면 그걸로 끝인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나불거렸단 말이오.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까 그 여자 입장에서는 하늘이 도와준 거겠지. 똑같은 앰플을 똑같은 방법으로 삼켰는데 여자는 살아났단 말이야. 역시 여자란……? 여자의 목숨이 훨씬 질긴 법이라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남산1호가 하나원을 잠시 나오면…… 그러니까 외출을 하건 외박을 하건 간에 임시 숙소로 들어갈 거요. 그리고 나서 북경으로 대포폰으로 연락을 하는 거지. 그러나 접선 장소는 이미 정해져 있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바로 아래야. 동상 앞 바닥에는 청동으로 된 실물 크기의 해시계와 측우기, 혼천의가 있는데 거기서 만나는 거지.


이게 오백 년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인 세종대왕의 동상일세. 아주 옛날 일이지만 내가 모종의 임무 때문에 남조선에 잠깐 내려갔을 때 거기서 누굴 만났던 일이 있었지.”

저야 서울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광화문 광장을 잘 알긴 합니다만.”

거기는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거요. 그래서 안성맞춤인 거요. 그 사람들은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토속촌이라는 삼계탕집에서 삼계탕을 먹고 경복궁으로 가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정문으로 나와 광장으로 몰려가는 거요. 그 집 삼계탕이 맛있다고 중국까지 소문이 났다네. 걔는 적구화 교육을 철저히 받아서 남한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이상의 수준이오. 서울 지리도 샅샅이 익혔기 때문에 아주 훤해요. 서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소. 교육 과정이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어떠한 비상 상황이 일어나도 귀신처럼 날쌔게 이동할 수 있을 거요.”

암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암호는 동무가 먼저 백두산 천지는 벌써 살얼음이 얼었어요하면 그쪽에서 한라산에는 지금 단풍이 한창이지요할거야.”

남산1호와 접선하는 일자와 시간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접선 일자는 영감태기가 외출하여 사무실에 출근하는 요일과 남산1호가 하나원에서 외출 또는 외박하는 날짜를 고려해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소만. 문제는 없겠지? 어때요?”

접선하는 시간은 오전이 좋겠군요. 퇴근하는 시간은 대략 정해져 있는데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오후 5시쯤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북경에서는 만날 날짜와 시각을 정해서 양쪽에 알려줄 거요. 흔히 볼 수 있는 관광용 가방이어야 하지. 가방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통째로 전달하는 거야. 가방 속에는 장전된 총과 앰플, 안경, 관광객이 쓰는 모자, 실리콘 가면, 갈아입을 가벼운 여름 상의가 들어있어야 하오. 남산1호가 처음 나타날 때는 완전히 중국 관광객처럼 행세할 거요. 서툴지만 광둥 말을 조금 할 수 있지.”

제가 남산1호를 정확하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기 사진을 보게나. 이게 남산1호야.”

참 단정하게 잘 생겼습니다.”

아까운 인물이야. 우리들의 가혹한 운명인 걸 어떡하겠어. 우리는 항상 목에 올가미를 걸고 사는 거요.”

제가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에 얽혀들었군요.”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다네. 그러니까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 최후의 수단인 거야. 우리가 가는 길에는 단 한 번도 무풍지대가 없었소. 우리는 언제나 폭풍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야 했소.”

잘 알겠습니다.”

그걸 아시오. 미행을 조심해야 하오. 미행이 있다고 가정하여 행동하시오. 만약 미행의 낌새가 있으면 즉시 접선을 중단하시오. 장 동무 임무는 영감태기의 동선을 알려주고 나서 바로 헤어지는 거요. 뒤도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요. 그 다음은 다른 공작원이 알아서 할 거요.”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그렇지…… 차질이 있으면 안 되지.”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다.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장 동무는 안주머니에서 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흰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자금을 내려보내지 못하는데……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요. ‘자력갱생의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소. 그래서 비자금이건 공작금이건 음식점이나 회사를 직접 운영해서 가급적 스스로 마련해야 하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니까 고맙소. 그 대신 중국의 수출회사는 우리가 잘 관리하고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마진이 너무 적지요. 그래도 안전하니까 다행입니다. 그 정도 마진이면 빠듯하지만 조직을 유지하는 데 별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동무! 동무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오. 국정원 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귀신처럼 행동해야 하오.”

잘 알겠습니다.”

장 동무는 흰 머리가 몇 가닥이 솟아오르기는 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맑은 하늘에는 일곱 빛깔의 무지개는 뜰 수 없어요. 무지개는 오로지 물방울 속에서만 빛나는 거요.”

무지개라고 하셨나요……

그건 알아야 하오. 우리는 남북대결의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요. 민족 분단의 희생자란 말이오. 언제가 될지 모르겠소만 남북 화해가 이루어지고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해방될 거요.

그때까지 행운을 비오.”

우리 생전에…… 가능할까요.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