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배은망덕, 용서 혹은 복수

 

                                      브루투스, 너마저!

                                            ― 카이사르

 

장편소설 2010은 실화소설이고 역사소설이다. 그래서 역사적 실재를 증언한다. 그러나 나는 증언을 통해서 공산주의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역사상 모든 독재정권의 본질적 속성이었으니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 유신체제도 전두환의 군사정권도 똑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북은 악이고 남은 선이라는 선과 악의 이항대립으로 보지 않는다. 북쪽에는 2,000만의 인민들이 현실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북한은 가혹한 독재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내적 논리가 있다. 남과 북이 서로 실체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화해하지 않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 우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전쟁으로 간다면 그건 민족의 파멸일 뿐이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배신과 배은망덕, 관용과 용서 혹은 복수에 대해서 성찰하려고 한 것이다. 배신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배은망덕은 받은 은혜에 비례하지 않는다.) 소포클레스는 기만하고 배반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이다라고 했다. 카이사르는 23군데 자상을 입고 죽어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배신은 매우 흔한 일이다. 누구나 인생 역정에서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한다. 누가 살아가면서 배신을 안 할 수 있는가. 끝없이 쏟아지는 거짓말, 그것도 일종의 배신 아닌가. 배신에는 은밀한 쾌감이 숨어있다. 배신은 우리 삶의 필수품이다. 죽마고우 같은 친구 간 배신, 부부 간 배신, 연인들의 배신, 가족 간 배신, 민족적 배신, 역사적 배신. 그래서 비극 작품은 거의 대부분 배신과 복수를 주제로 한다. 성경 역시 배신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기독교 교의는 용서를 강조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복음 6 : 27~28)’ 그러나 이해타산이 없는 순수한 용서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용서는 자기 기만이고 가식이고 위선일지 모른다.

배신을 당하면 분노, 증오, 응징의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용서보다는 복수가 먼저이고 당연한 것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 (출애굽기 21 : 24~25)’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지고지순한 원칙으로 내세우는 죄형법정주의란 다름 아닌 인류 역사에서 면면히 내려온 복수의 관념을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

신곡을 쓴 알리기에리 단테는 중세를 기준으로 해서 역사상 가장 비겁한 배신자로 예수를 밀고해서 배신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롯 (그리스어로는 이스카리옷) 유다와 카이사르를 배신한 (그의 양자 혹은 심복이었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지목했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들던 날 밤에 내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했지만 유다의 배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수는 죽은 후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실패한 혁명가였다. 그는 로마 공화정을 부정하고 독재의 길로 가고 있는 카이사르를 제거해서 꺼져가는 공화정의 불씨를 살리려고 했지만 카이사르의 정식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 (나중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타도되어 복수를 당했고 결국 공화정은 무너지고 로마제국은 세습 왕조 체제가 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사망한 지 2년 후 원로원에 의해 신 () 율리우스 디부스 율리우스 (Divus Julius) 로 추대되었다.

그런데 단테는 배신을 최악의 범죄로 간주했다.

신곡에서 지옥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어린 영혼이나 또는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위대한 시인, 철인으로서 선행을 행한 자들의 영혼이 사는 (그래서 지옥에 있으면서도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림보라고 하는 제1,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쉬지 않고 불에 타는 지옥의 폭풍에 시달리는 제2, 탐욕가들이 케르베로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제3, 낭비와 인색한 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제4, 분노한 자들이 스틱스 강의 흙탕물에 잠겨 벌 받고 있는 제5, 이교도들이 불타는 무덤에 누워 있는 제6, 폭력을 사용해 죄를 지은 영혼들이 미노타우로스에 의해 벌 받고 있는 제7,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자를 사기한 유혹자, 아첨꾼, 고성죄인, 점성술사, 마술사, 도박꾼, 위선자, 도둑, 사기꾼 집정관들, 불화와 분열의 씨를 뿌리는 자들, 화폐위조가, 연금술사 등 죄인들이 열 개의 굴속에 갇혀 있는 제8, 친족을 배반한 영혼들, 조국과 자기 당파를 배반한 자들, 친구와 동료를 배반한 영혼들, 은인을 배반한 영혼들이 코치토스의 얼음 속에 파묻혀 있는 제9원이 있다.

그러므로 상층 지옥에서 하층 지옥으로 내려갈수록 죄는 더욱 무겁고 따라서 형벌은 더욱 가혹한 것이다. 단테는 배신자들을 가장 무겁게 처벌한 것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972월 북경 한국 총영사관으로 들어와 망명 신청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해 423일 필리핀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왔다. 김영삼 정권의 말기쯤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김씨 왕조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확립한 인물로 지금까지 탈북이건 망명이건 간에 남으로 내려온 최고위층 인물이었다. 그래서 남북한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김재규 장군은 19791026일 초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유신독재체제의 심장인 박정희 대통령을 발터 권총으로 확인 사살까지 했고 그가 죽자마자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유신체제는 순식간에 종말을 고했다.

두 사건은 17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그들은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신성 불가침의 존재인 최고 지도자를 배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배신을 할 충분한 이유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감행할 만한 대의명분이 있었다.

황장엽 선생은 북한의 김씨 봉건 왕조 체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이 하루빨리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민족 분단의 비극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한 몸을 던지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는 충분히 활동할 여건이 안 되었으므로 아무런 실질적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2010101087세의 나이로 논현동 안전가옥에서 노환으로 죽었다. 그의 시신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년 후인 20111217일 열차 안에서 심근경색으로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지만 김재규 장군은 위대한 혁명을 성취했다. 바람 없는 천지엔 꽃이 필 수 없고,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 (無風天地無花開 無露天地無結實)

그에 의해 스탈린 체제처럼 지독했던 유신독재는 붕괴되고 제6공화국 체제가 성립하는 단초를 마련했던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집권이라는 과도기가 있기는 했다. 19876월 혁명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날 밤 김재규 장군이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그때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 역사는 온갖 혼란과 비극적 상황 속에서 몇십 년을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을 배신한 것이 아닐까. 그걸 배신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가족을 희생시킨 것이다. 황장엽 선생의 가족들은 (망명 당시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망명한 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부인은 자살했고 자녀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숙청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가혹한 결과인 것이다. 김재규 장군의 경우 그의 가족들은 전두환 도당에 의해 일부 재산이 몰수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죄 없는 남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희생과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진 온갖 비난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배은망덕과 대의명분 사이에서 말 못 할 고뇌를 겪었다. 그들은 민족적 운명이 걸린 대의명분 앞에서 그 하찮은 옛날 봉건 왕조 시대의 잔재인 천륜을 저버렸다는 배은망덕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것은 가혹한 운명이었다.

 

배신에 대한 대가는 용서 또는 관용인가, 아니면 복수인가.

호메로스는 복수는 흘러내리는 꿀보다 훨씬 더 달콤하다라고 했지만. 김재규 장군의 경우 헌정 질서를 파괴한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 도당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잔인한 고문과 모욕과 폭력을 행사했다. 박정희로부터 쿠데타 기술과 철권정치의 의지를 전수 받은 전두환은 먼저 불문곡직하고 폭력을 행사해서 철저한 복수를 감행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명백한 단순 살인인데도 그보다 죄질과 형량이 훨씬 무거운 무서운 죄인 내란목적살인죄를 적용했다. 그 당시 전국적인 비상계엄체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급해서 민간법정이 아니라 군사법정에 세워서 무슨 군사작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속전속결로 재판을 진행하고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마자 서둘러 3일 만에 사형집행을 하였다. (최근 김재규 장군의 유족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재심 신청을 하였다.)

김재규 장군의 재판은 민간법정에서 3심을 거쳐 충분히 심의해서 단순 살인인지 여부를 가려야 했고 사형집행은 시간을 두고 국민들의 도덕적 평가와 법 감정에 의한 정당한 심판을 거친 후에 집행 여부가 결정되었어야 했다.

전두환 일당은 대법원 재판 과정에서 단순 살인이라는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데려가 모진 고문을 했다. 물론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전두환의 하수인으로 그의 지시에 충실히 복종했다.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김형욱 전 정보부장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배신한 행위는 어떠한 대의명분도 없는 순전히 자신의 일신을 도모하기 위한 아주 전형적인 배신이었다. 그래서 그의 망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망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부정축재한 많은 돈과 가족을 챙겨서 미국으로 도망간 비겁한 도망자일 뿐이다.

박정희는 그 독한 성격대로 당연히 복수를 택했다.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 국가기관을 동원해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고 마침내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김형욱은 박정희의 심복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데 앞장선 충실한 문지기이고 일등 공신이었지만. 박정희는 그때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후련했을까.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했다. 복수는 다시 복수를 일으키므로 악순환을 낳는다. 그 자신이 20일 후 총을 맞고 죽었지 않은가. 이번에는 김형욱이 지하에서 복수를 한 셈이다.

[박정희가 누구인가?

박정희는 일제 침략 시기 대구사범학교 출신 초등학교 교사로서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 장교가 되어 항일독립군 토벌에 가담했다. 그는 두 번의 창씨개명을 통해 스스로 일본인임을 선언하고 실천했다. 첫 번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 (高木正雄)이고, 두 번째는 오카모토 미노루 (岡本實)로 완전히 일본식 이름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군인 박정희는 재빨리 한국군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박정희와 그 형 (박상희,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인) 등은 남로당 당원이었고 1948년 제주 4·3 항쟁 때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은 군대 내 남로당원들의 선동에 따라 제주 출동 명령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남로당 조직이 드러나고 박정희는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그는 남로당 동료들의 명단을 제공하고 석방되어 군에 복귀하고 6·25 전쟁 직후 장군으로 진급했다. ‘친구를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13)라는 성경 말씀이 있는데 말이다.

그는 1969년 한밤중에 불법 날치기를 통해 3선 개헌에 성공했고 1971년 대통령 출마 연설에서는 다시는 이러한 방법으로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공언했다. 과연 그는 유신독재체제 하에서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원수 갚을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참고 견디면서 장작 위에서 잠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와신상담을 선택했다. 북한은 2010년 이른 봄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기획 지휘하에 황장엽 선생을 살해하기 위해서 두 사람의 공작원 (○○○○)을 탈북민으로 가장해서 남한으로 파견했지만 그들은 국정원이 운영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적발되었다. 그때는 황장엽 선생이 87세의 고령으로 자연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연사하기 전에 살해하여 복수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남파 공작원들은 그해 420일 구속되었고, 7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0년 및 자격정지 10년이 선고되었으며 (검사는 15년을 구형했지만), 그 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그들은 2020년 여름 만기출소했다. 지금은 지방에 있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시설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출소한 후에도 다시 10년의 자격정지 형이 집행되고 보안관찰법에 의한 보안관찰의 대상이 된다. (자격정지 형을 선고받으면, 공무원이 되는 자격, 공법상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법률로 요건을 정한 공법상의 업무에 관한 자격이 당연히 정지된다. 자격정지의 선고를 받은 자는 이를 검찰청이 관리하는 수형자원부에 기재하고 지체 없이 그 등본을 형을 선고받은 자의 등록기준지와 주거지의 시, , , 면장에게 송부한다. 형사소송법 제476조 참조.) 어쨌거나 그들은 보안관찰법이나 출입국관리법 등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해외 출국은 불가능하다.

 

나는 지금까지 몇몇 역사소설을 쓰면서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했는데 이 소설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역사적 사건과 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관념이 결합된 소설인) 인프라 소설을 쓰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실을 왜곡해서 흥미위주로 스토리를 전개하지는 않았다. 나는 작가로서 미학적 관점에서 소설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합리적 추론과 신빙성 있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러므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다면 거의 전부가 명백한 역사적 실재이다.

조지 오웰은 194811월에 1984의 원고를 탈고했다. 그는 1948년의 마지막 숫자 두 개를 뒤집었다. 완전히 우연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원고를 1949년에 마쳤다면 그 제목은 1994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 책이 출간되고 나서 6개월 만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1984는 스탈린의 전체주의와 미국의 비인간적 테크노크라시의 폭주, 매스 미디어의 영향을 결합하여 빅 브라더가 관리 지배하는 세계를 상정하고 있었지만 1984년에 그러한 세계는 도래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고도로 발달했고, 온갖 종류의 전자기기가 발달했다. (유대인과 흑인, 집시, 미개한 종족들을 멸살하기 위하여 히틀러가 그렇게 집착했던) 우생학과 유전공학의 접목,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1인 미디어의 발전, (생각하는 기계인) AI가 출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세상은 인간의 신경망처럼 촘촘하게 형성된 감시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독재자에 의한 전체주의 세계가 도래한다면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2010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 것처럼 그해 4월 황장엽 선생을 살해하기 위해 탈북자로 위장하여 남파되었던 공작원은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황장엽 선생은 그해 1010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들의 구속이나 사망 사실은 신문에서 단신으로 간단하게 취급되었다. 그래도 그들 개인의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한 해였던 것이다.

나는 이 소설 속에서 황장엽 선생의 회고록,황장엽 선생의 마지막 대화, 황장엽의 망명 실무를 맡았던 김덕홍 (72)의 회고록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김영환 지음 시대정신을 말하다, 한기홍 지음 진보의 그늘,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의 수기, 탈북자의 증언, 남파 간첩 관련 일부 기록과 재판의 최종 결론인 판결문, 공개된 자료 (위키백과사전의 평양직할시 행정구역 설명서 및 함흥시 행정구역 설명서·네이버 두산백과사전의 조선노동당 검색 출력물·2010914일자 연합뉴스의 북한 조선노동당 조직도, 조선노동당 규약 ·디지털 북한백과사전 검색 출력물·2006822일자 데일리NK의 기사·월간 북한200612월호 북한의 대남전략·전술과 공작실태기사·2009510일자 연합뉴스의 북 대남 해외공작기구 정찰총국으로 통합기사·2010218일자 중앙일보의 북 군부 대남통 김영철, 공작총책으로기사·2010831일자 한국일보의 김영철 정찰총국장 황장엽 암살 사건 기획기사·1992524일자 동아일보의 북한군 비무장지대 침투서 사살까지기사·2010531일자 주간조선의 김일성·김정일의 대한민국 공격사 65기사·2010913일자 연합뉴스의 TV, 96년 강릉 잠수함 공작원들 영웅 미화기사·201061일자 월간중앙의 악명높은 정찰총국 35호실 500명 저승사자 출동대기기사·2003129일자 오마이뉴스의 황장엽 출판기념회, 보수인사들 총출동?’기사·평양직할시의 위성사진·인터넷 구글어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검색한 두만강 사진·중국 외교부 발행 중국 주재 외교관 명부·201044일자 연합뉴스의 김정일, 황장엽씨 동물이하 매도기사·201045일자 연합뉴스의 북 매체 황장엽 무사치 못할 것기사·20101010일자 조선일보의 황장엽, 계속된 암살위협 속에서도 북 비판 이어가기사·2008825일자 법률신문의 대법원 탈북 피살 이한영 씨 유족에 대한 국가배상인정기사·남파 공작원에 의해 피살된 탈북자의 유가족에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문·황장엽 살해 협박범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인터넷 검색 사이트 네이버의 연길시 및 장춘시에 대한 검색물·인터넷 중국 기차역 운행 일정 검색 사이트 출력물·네이버 백과사전 황장엽 인물 자료에 관한 출력물·중국 도로 정보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 출력물·조선향토대백과사전), 기타 참고 문헌, 인터뷰 기사, 인터넷 검색 등에 근거해서 역사적 증언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 대부분 가명을 사용하였는데 남파된 테러리스트들의 경우 아직 실명을 밝힐 단계는 아니고 또한 작가로서 소설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가명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실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실제 날짜를 변경했고, 몇 개의 장면을 만들어 삽입했고, 일부는 내용을 조금 비틀었고, 여러 곳에서 상황에 맞추어 대화를 일부 조정하고 보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