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 이 한밤에 남편은 /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김상빈(金尙彬)은 군용 기름을 횡령했을 뿐만 아니라 장마당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 앞에서 고성방가를 하고 신성 불가침의 존엄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반당 반혁명 종파 분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높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국가안전보위부 건물은 온통 회색빛을 띠고 있었는데 거기 조사실에서 보위부원에게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보름 동안 조사받은 내용은, ‘술 마실 돈이 어디서 났는가’‘도둑질한 게 틀림없는데 어디서 무얼 훔쳤는가’‘혼자 한 게 아니고 틀림없이 누구와 함께 하였는데 그는 어디로 도망갔는가’‘장마당에서 도둑질하면 총살된다는 걸 모르는가’‘유언비어 퍼뜨리면 총살인 거 몰랐나’‘남조선 괴뢰들의 가증스러운 심리전에 속은 거 아닌가’‘남조선에 환상을 갖고 있는 거 아닌가’‘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비방한 이유는 무엇인가’‘위대한 수령님을 비방한 이유는’‘남조선 국정원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무슨 지시를 받았는가’‘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 수 있다등등이었다. 그 후 호송원 두 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정치범수용소로 넘겨진 것이다. 북한의 수용소는 구 소련의 강제 수용소 또는 나치의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킬 정도로 악명높은 곳이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대량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수많은 탈북자와 그들의 입국 행렬 중에는 정치범수용소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관리자나 경비대원으로 근무한 경우, 일정 기간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출소한 경우, 북한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죽을 때까지 수감되어야 했지만 극적으로 탈출한 경우, 수용소가 폐쇄되면서 수십 년간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경우 등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수용소의 참담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폭로했다.

정치범들은 땅속 깊은 갱도에서 유해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코발트 광석을 캐거나 원폭 실험용 비밀 갱도 건설에 동원되어 흔적 없이 죽거나 생화학무기 성능을 시험하는 인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곳에는 오직 무자비한 폭력, 잔인한 고문, 지독한 굶주림, 끝없는 절망, 분노, 무고한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날이 밝으면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운 방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하루종일 강제노동에 시달린다. 유일한 낙은 틈틈이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옛날 좋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은 경비병들에게 호되게 당하지 않고 그날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것이다.

수감 대상자는 초기에는 일제시대 지식인, 종교인, 지주 가족, 권력 투쟁에서 숙청된 자, 1980년대는 유일사상 독재체제와 김정일 세습 비판자, 북송 재일교포 중에서 낙인이 찍힌 자, 납북자나 월북자, 외국물을 경험한 외교관이나 유학생,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행 탈북 브로커, 탈북 및 무역 과정에서 한국인이나 외국인 접촉자, 기독교 활동가, 외부 정보 유입자, 구체적인 행동은 없지만 말로 반동 짓을 했다는 말 반동분자 또는 권력자에게 무조건 밉보인 자 등등이다. 그 엄격한 사회에는 도처에 감시자, 고발자, 권력자들이 깔려있기 마련이고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수용소나 감옥에 가두어야 할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증거도 필요 없고 재판도 없다. 여차하면 무조건 죄목을 만들고 반동분자라는 죄목을 씌우면 되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는 일반적으로 완전통제구역혁명화구역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완전통제구역은 종신 수용소를 말한다. 여기에 한 번 수용되면 석방되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죽을 때까지 그곳에 갇혀 지낸다. 혁명화구역은 일정 기간 수감되었다가 혁명 정신으로 개조가 되어서 석방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수용소는 모두 완전통제구역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15호 수용소내 일부인 서림천 구역만이 혁명화구역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사실상 종신 강제노동 수용소의 성격을 띠고 있다.

행정문서에 기재되는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경비대○○군부대농장이다. 여기서 ○○은 지역 이름이거나 두 자리 숫자이고, 농장은 위장한 것이어서 공장이나 기업소로 기재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의 상층 계층은 수용소’ ‘종파굴’ ‘유배굴로 부르기도 하고, 일반 주민들은 통제구역’ ‘닫긴 (닫힌) 구역이라고 하거나 ○○라고 수용소의 고유번호만으로 부르기도 한다. 수용소 인접 지역의 주민들은 생쥐굴이라고 한다.

그는 16호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처음 몇 개월 동안은 건설작업반에 배치되어 일했고 그런 다음 운 좋게도 돼지를 기르는 돼지 목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수용소의 일반적인 식사는 옥수수로 만든 밥과 소금에 절인 염장 배추가 전부였고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런데 그곳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살찐 쥐가 많고 돼지 사료용으로 있는 곡식을 훔쳐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는 쥐, 개구리, , 곤충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더 이상 쥐를 볼 수 없을 때에도 돼지 목장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쥐가 많아서 좋았다. 그곳 쥐들은 너무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다. 쥐의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고 통째로 불에 그슬려서 털을 완전히 털어낸 다음 박박 문질러 씻어 그대로 솥에 넣어 푹 삶는다. 그러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탑탑하고 부연 국물에 기름기까지 둥둥 뜨는데 그 국물과 흐물흐물해진 살, , 작은 발까지 씹어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북한의 모든 수용소는 첩첩산중 오지에 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거대한 지옥 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용소 구역의 외곽에는 전기가 흐르는 철책선을 설치해 경비대가 2중으로 감시를 하여 외부인의 접근과 수감자들의 탈출을 막고 있다.

그는 사소한 이유로 강제 수용되었다. 그는 수용된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빨리 이 지옥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16호 수용소는 함경북도 화성의 첩첩 산골에 있는데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14호 수용소만큼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 14호 수용소였다면 경비병들이 최전방 휴전선처럼 철저하게 근무하기 때문에 절대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6개월에 한 번씩만 옷을 지급한다. 10월 말에 지급된 겨울 바지는 무릎과 엉덩이에 구멍이 나 있었다. 탈출할 때에는 보온을 위해 원래 입던 옷 위에 훔친 옷을 껴입기로 했다. 매서운 추위를 막을 외투나 모자, 장갑은 없었다. 수용소의 일과는 종소리로 시작되어 종소리로 끝난다. 아침 기상 종소리로 시작하여, 일의 시작, 점심시간, 일이 끝나는 시간, 취침 시간, 비상소집 등 모든 것을 종소리로 알린다. 수용소에서는 일 년에 단 3일만 쉬는데, 설날과 국가 최대 명절인 김일성의 생일 (415)과 김정일의 생일 (216)이다.

처음 탈출 계획은 수용소 철조망 근처로 갈 구실을 만들어줄 작업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거기서 하루 종일 나무를 자르고 쌓는 작업을 하게 된다. 20명 정도를 산으로 보냈다. 그날 수감자 무리는 산비탈 꼭대기 근처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날씨는 청명했지만 춥고 바람이 불었다. 몇 명은 벌채한 나무에서 작은 도끼로 가지를 베어내고 나머지는 나무를 쌓았다. 작업반장이 말했다. “오늘부터 겨울나기 나무를 한다. 우리 독신자반은 자기에게 맡겨진 작업량을 완수하기 전에는 산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라. 날밤을 새서라도 하루의 목표는 무조건 달성해야 한다. 만약 달성을 못 하면 식사는 없다. 알겠어! 알겠는가!”

장작 모으기 작업은 모처럼 찾아온 뜻밖의 행운이었다. 장작을 모으면서 철조망 쪽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철조망 높이는 2미터 가량이었고 그 부근에 바로 철책선이 설치되어 있다. 전기 철책선에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 여러 가닥이 높은 기둥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고압 전선의 위아래 간격은 20~30센티미터 가량이었다. 전선을 건드리지만 않고 넘어가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몰랐다. 무릎을 꿇고 두 전선 사이로 장갑을 낀 양손을 밀어 넣은 다음 머리와 어깨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만에 하나 전선과 접촉되면 불빛이 번쩍이고 살이 타면서 죽게 될 것이다. 지뢰밭은 없기 때문에 철조망과 철책선 밑으로 50미터가량 땅굴을 판다면 가능할 것이다.

감시탑은 수감자들이 나무를 하는 곳에서 북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곳에 높이 솟아 있었다. 경비병은 구식 AK-47 총을 어깨에 둘러멘 채 둘씩 나란히 걸어 다니며 철조망 안쪽을 순찰했는데 순찰을 도는 간격이 30분쯤으로 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업을 책임지는 작업반장은 같은 수감자 신분이어서 무기가 없었고 통제도 느슨한 편이었다. 수용소 철조망 저 너머로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완만하게 내리뻗어 있었기 때문에 몸을 숨기고 걸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철책선을 넘어 탈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늦가을 어느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목재를 싣고 있던 청진행 기차의 화물칸 연결고리에 몸을 바짝 붙여 숨어있다가 기차가 수용소 밖으로 이동할 때 기차와 함께 빠져나왔다. 그날 황혼이 내리면서 짙은 어둠이 적막과 함께 빠르게 퍼졌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감시탑의 전등 불빛이 인공 달빛처럼 어둠을 헤치고 철조망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기차가 함경북도 경성군 지역에 이르러 저속으로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갈 때 뛰어내릴 수 있었다. 일단 수용소를 빠져나오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언덕 맨 윗쪽이었기 때문에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는 극한 훈련을 통해 어둠 속에서 길을 걷는 데 익숙했다. 처음에는 나무들 사이를 뚫고 갔다. 잡목이 우거진 언덕은 밀려드는 어둠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탁 트인 골짜기가 나왔다. 거기서 잠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북한과 중국 간 국경은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두 개의 강이 가로막고 있으니 국경선은 압록강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두만강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두만강은 폭이 좁고 깊이가 지역에 따라 시냇물처럼 얕다. 겨울에는 대체로 강물이 얼어 있기 때문에 걸어서 건너도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에는 추위 걱정은 없지만 대신 구름같이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 망할 놈의 모기들은 날이 샐 때까지 공격을 그칠 줄 모른다.

국경 지역 중국 쪽 강둑에는 북한 쪽과 달리 빽빽이 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중국 국경 수비대는 5백 미터나 1킬로미터 간격으로 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불법 월경자를 찾아서 체포하는 것이다. 그들은 체포하자마자 경비대 막사로 데리고 가 엄격한 조사를 한 후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 인계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항상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빙두라고 하는 북한산 마약은 질이 좋고 독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중국에선 최고의 선물로 쳤다. 그래서 잡히면 마약을 뇌물로 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북한산 마약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김상빈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상빈은 수용소 내에서 충분히 귀동냥해서 들었기 때문에 두만강의 어느 지점을 건너야 하는지, 국경 근처 검문소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북한 국경 경비대원 역시 뇌물만 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는 몰래 감춰두었던 돈으로 준비를 했다. 경비대원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현금 약간과 담배 몇 갑, 과자 몇 봉지를 쥐여주면 된다. 현금의 경우 북한 돈보다 달러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경비대원에게 자신이 군인이며 휴가를 얻어 중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 된다.

그는 부령군에 이르러 하룻밤을 자고 나서 다시 걷고 걸었다. 그리고 그다음 다음 날에도 간단하게 건널 수 있는 수심이 얕은 두만강 줄기를 찾아 온종일 거의 40킬로미터를 걸었다.

그는 지역을 통과할 때마다 경비대원을 피할 순 없었다.

여기 담배가 있어요.” 그는 경비대원에게 먼저 장백산 담배 두 갑을 건넸다. 경비대원은 담배를 받아 재빠르게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그에게 빨리 지나가라고 몸짓했다. 두 번째 검문소에서 다른 경비대원이 공민증을 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담배와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모두 어리고, 얼굴은 새카맣고, 몸은 깡마르고, 굶주려 있다. 그들은 공민증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고 담배와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그가 물었다. “연길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가디요. 두만강이 아직 풀리지 않았디요? 괜찮갔디요?”

경비대원은 친절했다. “아직은…… 얼음이 완전히 녹지 않았어. 강바닥이 드러난 곳도 있으니까.”

강폭은 150여 미터 정도 되었다. 얼음이 단단한 바닥을 골라서 그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강바닥이 깊지 않아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건너편 중국 쪽 강둑에서 뒤로 돌아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북한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중국에 무사히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산속에서 기온이 급강하하며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기진맥진했다. 그는 추위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숨겨가지고 있던 마약을 몇 차례나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야산에서 잠을 잤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든다. 다음날 새벽녘에 가까스로 잠이 깨면 얼굴에는 서리가 잔뜩 덮여있다. 두만강에서 피어오른 짙은 안개는 아침 햇살에 멋쩍은 듯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인적이 드문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회령군 인계리 부근 두만강을 건너 산악 경로를 따라 중국 길림성 연길시 지신진까지 이동하고 용정을 거쳐 오후 늦게 연길 시내로 들어갔다.

 

연길은 길림성에 속해 있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 도시로 미니 코리아로 불린다. 도시 내에서는 한국말 및 한글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려관’ ‘령토’ ‘력사’ ‘련발처럼 북한식으로 첫 글자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을 뿐이다. 연길과 인천 간에 매일 직항편이 뜨기 때문에 연중 내내 백두산 관광과 윤동주 생가, 도문 다리를 방문하려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연길 서시장 도로 맞은편에 낡은 아파트가 즐비하였다. 그는 연길에서 용정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서시장 3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자 6미터 폭의 첫 번째 도로가 나왔다. 거기에 아저씨가 하는 규모가 꽤 큰 한국식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일층 창문에는 주먹만 한 빨간 글씨로 연길 중국식당이라고 쓰여 있다. 그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국의 중식당에서 나오는 요리에 중국식 향신료를 듬뿍 친 한국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특별한 중화요리와 한국의 갈비찜과 비슷하게 돼지갈비와 쇠고기 등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간장으로 양념을 한 후 푹 끓여서 익혀낸 홍사오 요리가 별미여서 그걸 중국 백주와 함께 팔았는데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가 점심시간이 지나서 한가할 때 식당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제가…… ……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통통한 조선족 남자가 주인이었다.

그는 낮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그죽죽했고 말할 때마다 입에서는 시금털털한 술 냄새가 났다.

그가 말했다.

북조선에서 왔단 말이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으니 빨리 가라고.”

아니지요……

빨리 가라니까. 지금 감시가 심해서 걸리면 내가 죽는단 말이야. 알겠어?”

제 아버지를 아시잖아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6촌 동생이라고……

뭐라고? 네 아버지가 어쨌다고…… 어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라고.”

제 고향은 양강도 갑산입니다. 제 아버지 성함은 심근수입니다. 교통사고 때문에 다리를 약간 절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어요.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아저씨는 일찍부터 국경 무역을 하다가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여기서 식당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길에 가거든 찾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에게는 재종 형이니까 내 조카란 말이지. 네 아버지를 만난 지가 꽤 오래됐지만…… 너에 관해 들은 것 같구나. 공부를 잘해서 길주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 했는데……?”

길주물리전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인민군에 자원 입대하여 조선 인민군 2군단 3사단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얼굴 생김새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틀림없습니다……

네 이름이?”

본래 이름은 심승진입니다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 김 씨 이름으로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가서도 김 씨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만약의 경우 가족들에게 화가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명을 쓰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가명이 필요할 거다. 김 씨는 가장 흔한 성이니까.

고향과는 연락이 끊어진 지가 오래되었지. 국경 무역하는 게 무슨 죄가 된다고 수용소에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때부터 북에는 발을 끊을 수밖에 없었어. 어쩔 수 없었지.”

저는 남조선으로 가고 싶습니다. 제대하고 나서 큰 도시인 함흥으로 갔습니다만 어디 갈 데가……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하고 이리저리 장마당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네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여긴 식당이니까 음식은 널려있지. 많이 먹고 몸을 추슬러야 한다. 술도 마실 줄 알면 중국 술은 종류별로 많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당분간 우리 집에 있으려무나. 내가 북쪽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남으로 가겠다는 거겠지.”

희망이 없습니다.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 중국인 신분을 취득할 수 없을까요?”

나는 옛날 어수룩할 때 중국 호구부 제작을 해서 중국 사람이 되었지.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 절차가 까다롭고 돈도 많이 들지. 그러니까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브로커를 통해 갈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다른 방법이 없지.”

아저씨는 남한에 갔다 온 적 있나요?”

나는 중국 국적이니까 여권이 있어서…… 여기 연길에서 인천까지는 매일 직항편이 있는데 2시간밖에 안 걸린단 말이지.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씩 단둥항과 인천항을 오가는 단둥 페리선이 있는데 16시간밖에 안 걸리지. 무슨 무역을 해볼까 해서 한국에도 몇 번 다녀왔지만…… 한국에 가보니까 탈북민들은 역시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어.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고생길이었지. 그래도 북쪽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지. 놀고 있어도 정부 지원금으로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받으니까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어. 병 치료 문제는 우대 혜택을 받고 있고 주변에 자원 봉사자와 후원 단체가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너는 젊으니까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잘해야 된다. 어딜 가든 부지런하면 굶어 죽진 않으니까.”

그렇지요. 생지옥인 북한과는 비교하면 안 되겠지요.”

그건 알아야 한다. 여기서 오래 있을 수는 없어.

북한 안전보위부 끄나풀들이 여기까지 나와서 설쳐대니까 감시가 너무 심하단 말이야. 걔들은 눈에 불을 켜고 탈북자들하고 남쪽에서 올라온 공작원들을 색출하고 있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중국 공안들이 호구조사를 나온단 말이야. 너의 말투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과는 많이 달라서 중국 공안에게 신분이 금방 탄로 날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있을 수 있는 게 한 달 정도만 무사히 있을 수 있어.

매달 그것들한테 바치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너는 모를 거다. 그래서 많이 봐주는 거지. 지금부터 남조선으로 가는 길을 알아보아야 한다. 나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스스로 브로커를 알아봐야 할 거야. 내가 도울 수 있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브로커는 대부분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지만 그들 중에는 협잡꾼이 많이 있지. 연변에만 탈북 브로커가 200명이 넘는다고 하니까. 질이 나쁜 브로커는 탈북자를 유인해서 중국 농촌에 팔아먹기도 하고…… 그것들이 무슨 선교사 행세를 하면서 인신매매 조직을 운영한다고 소문이 나 있지…… 벼룩의 간을 빼 먹을 일이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협잡꾼한테 속지 않도록 해라.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구나.”

 

그날은 아침부터 가는 비가 내리다가 그쳤지만 날씨는 다시 추워졌다. 열흘이 지났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기다리고 있던 중국 동포 브로커로부터 한국산 LG 손전화로 전화가 왔다. “한국에 가자고 한 사람이 맞는가. 준비는 다 됐습니까. 지금부터 몸조심하세요. 쓸데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연길시 무지개다리에서 만납시다.”라고 하였다. 그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지만 위압적이고 명령조였다. 그래서 곧장 그곳으로 가서 40대로 보이는 브로커를 만나 그의 승용차를 타고 가서 어떤 아파트의 4층으로 올라갔다. 그 아파트에는 탈북자로 보이는 남자 두 명과 젊은 여자 한 명이 이미 와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모두 너무 긴장해서 잔뜩 굳어있었기 때문에 얼굴에서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거기서 브로커 여자를 만났다. 아주 짧게 친 머리를 검게 염색하였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녀가 정확한 남한 말을 사용하였지만 진짜 남한 출신인지 북한에서 탈북했는지 원래 연변 조선족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더욱이 그들 브로커 무리의 총책인지 아니면 고용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안경 너머로 예리하게 살펴보면서 말했다. “남조선으로 가고 싶단 말이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이것도 사업이니까 돈을 내야지. 그렇다고 해서 큰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야. 사업을 계속하려면 자금이 필요한 거지.”

그가 말했다. “얼마쯤이죠. 제가 지금은 돈이 많이 없습네다.”

선금은 이미 받았어. 그러니까 잔금이 남아있는 거야. 한국 돈으로 500만 원이야. 이번에는 안전한 코스로 가야 하니까 거리가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야. 요즘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단가가 많이 올랐지. 갚을 방법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지. 하나원을 퇴소하면 정착금이 나오니까 한국에 도착해서 갚으라고. 하나원을 졸업하는 날 우리 쪽 사람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의 지시를 따르면 되는 거지.

그렇지만 현금 차용증은 써야만 하지. 읽어보고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세요. 우리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 만약 한국에 도착해서 갚지 않으면 그때는 이걸로 소송을 제기하는 거야. 여러 번 속았으니까 할 수 없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끝까지 추적하니까 절대로 떼어먹을 생각을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요……

우리 말을 끝까지 잘 들으라고. 말을 듣지 않으면 중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떨구어 버릴 테니까. 그러면 탈북은 고사하고 객사할 수밖에 없어. 아니면 본전을 뽑아야 되니까 중국 농촌에 팔아버릴 수도 있어. 중국 농촌에 들어가면 탈출은 고사하고 평생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골골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녀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주님! 우리 주님!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소서. 자유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주님께서 함께 하소서. 중국 공안들의 눈과 귀를 막아 주십시오. 남조선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소서. 아멘! 아멘!”

브로커는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안의 검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서 필요하다면서 짐 검사를 하였다. 그래서 김상빈은 짐 속에 들어있던 주머니칼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북한에서는 귀한 책인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빼앗겼다.

다음 날 아침에 브로커로부터 더 안전한 선이 있다. 며칠 더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계속 일주일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브로커로부터 출발할 때가 되었다. 빨리 나오라고 해서 무지개다리에서 브로커를 만났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연길병원 앞에서 왕청현 출신 다른 조선족 브로커에게 인계되어 또 한 명의 탈북자와 함께 왕청에 있는 아파트 5층으로 갔다. 20평 남짓한 그 아파트는 계단은 폭이 좁고 내부가 어두컴컴하다. 벽은 오랫동안, 1~2년 정도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이나 닦지 않아서 때가 새까맣게 절어있다. 아파트 내부의 벽은 벽지를 바르지 않았고 그냥 회색으로 회칠만 되어 있다. 그리고 집안에서는 신발을 벗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 등 모두 5명의 탈북자가 브로커 두 사람과 함께 왕청을 출발해서 장춘행 기차를 탔다. 그들 일행은 마치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들은 출발할 당시 기차 안에서 절대로 입을 열지 말 것,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을 것, 화장실에 갈 때 한꺼번에 가지 말 것, 실수로 중국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애매하게 웃을 것, 만약 일행 중 누가 무슨 일을 당해도 섣불리 나서지 말 것 등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길림성의 성도이고 동북 3성의 중심지여서 교통의 요지인 장춘에 도착했다. 대합실은 무척 넓었지만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높고 낮은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마구 뒤섞여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다른 일행들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못하고 서로 외면한 채로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있다. 2층 대합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여덟 개의 기차 선로가 뻗어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벌써 북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보았다. 도시의 간판, 밤이면 번쩍이는 네온사인, (화장품, 가방, , 담배, 여성 속옷, 시계 등등을 주제로 한) 화려한 광고판들, 그것들을 파는 상점들, 오고 가는 자동차들, 사람들, 면도도 하지 않고 목덜미와 손등에 문신이 가득한 젊은 남자, 딱 붙어서 껴안고 가는 젊은 연인들. 시끌벅적하고 정말 흥미로웠다. 벌써 2010년 봄이다. 2010년은 내게 어떤 해가 될 것인가. 나는 복잡하고 들뜬 기분에 휩쓸려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나에게 모종의 목표가 있었던가.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분간 잊어버리자.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하지만 목표의 중압감은 나를 계속 짓누르고 있다. 초조하고 짜증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생각났다. 여자가 날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을까. 그녀는 말 끝마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으니까 믿어도 될까.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붙들어 두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일까. 그녀의 육체가 그걸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겉모습은 참모습과는 다르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동물이지 않은가, 여자에게는 바다와 같이 변하기 쉬운 성질이 있지 않은가, 여자의 마음은 누구든지 그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자는 남자를 죽이는 차가운 물이고 남자를 빠지게 하는 깊은 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녀는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그게 순리이다. 그렇지만 아닐 수도…… 이건 부질없는 헛된 망상일 수도 있다.

그는 갑자기 심장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만큼 혼란스러웠고 초조했다.

10시간을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다시 천진행 기차를 탔고 선양을 거쳐서 천진역에 도착했다. 3,000킬로미터를 3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천진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중국 공안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중국인 행세를 해야 한다. 그들 일행은 다른 중국 사람들처럼 기차 안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잤다. 중국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 맛있는 식사, 떠들썩한 술잔치를 벌이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간식으로 과일이나 삶은 달걀을 먹고 나서 껍데기나 음료수 캔이나 병은 아무렇지 않게 차창 밖으로 버렸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속옷 바람으로 지나다녔다.

특급 열차는 희미하게 쓸쓸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평야와 얕은 산, , 호수, 늪지대, 버드나무가 쭉 늘어선 운하, 아침 안개를 통과하면서 빠르게 달렸다.

김상빈은 선잠이 들었다가 깨면 얼굴을 창문에 바짝 대고 밖을 바라보면서 모옌의 소설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수수밭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그 소설의 배경이 산동성이었는데 기차는 산동성의 지평선마저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소설에서는 붉은 수수를 이용해 품질이 아주 좋은 고량주를 만들어낸 걸로 되어있다. 작가는 전쟁의 잔혹성과 일본군의 잔악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여자 주인공 따이펑리엔과 남자 주인공 위잔아오이의 사랑이 진정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정주역에서 곤명행 버스를 탔다. 검문소가 없는 노선의 시외버스를 연거푸 갈아타야 한다. 정주에서 우한과 양자강을 건너서 창사와 구이양을 거쳐 곤명에 도착했다. 도시를 거칠 때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바뀌었다. 그때마다 브로커는 강조했다. “대합실에서 신기하다고 두리번거리면 안 돼. 수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니까. 그저 평범하게 행동하라고. 버스에 오르면 바로 안전벨트를 매고.” 낮에만 달리고 밤에는 여관에서 잠을 잤다. 하루 종일 비좁은 버스를 타고 멀미를 하고 구토 증세를 느끼며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난 다음이라 아무리 허름해도 여관방에서 허리를 펴고 잠을 자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현재 이름은 박정아이다. 그녀는 처음 보았을 때 잔뜩 긴장해 있었으므로 얼굴은 생기 없이 창백하고 무표정했다. 그러나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김상빈이 말했다. “평양 출신인 것 같은데…… 피차 어려운 사정이 있을 테니까……더 이상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함께 여행하면서 무난히 지내면 좋을거요. 서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가고 있어요. 사람을 너무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브로커들도 같은 동포니까 우릴 함부로 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여행일까요. 비행기를 타면 연길에서 인천까지 2시간이고, 배를 타면 인천까지 16시간이면 가는데…… 우리는 목숨 걸고 탈출하는 거요. 잡히면 송환될 거고 그러면 끝장이니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요. 이럴 때는 술이 간절하지요.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면……

여자는 울고 있었다. 크게 흐느끼며 우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그녀가 말했다. “너무 무서워요. 앞날이 깜깜하지요. 모든 걸 잊어야 하니까 독한 술을 마시고 싶군요. 여자라고…… 이판사판이에요. 밤이면 잔뜩 취해야만 하지요. 그래야만 잠이 들 거 같아요.”

김상빈이 말했다. “정신적 고통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게 더 좋아요. 아쉽군요. 국경을 넘으면서 전부 삼켜버렸지요.”

박정아가 말했다. “조금 갖고 있어요.”

브로커가 압수하지 않았나요?”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넣었지요.”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벼운 손길은 점점 과감해졌다. 이제는 그녀의 머리칼, 얼굴, , 가슴을 어루만졌다. 밤이 되면 김상빈은 그녀와 함께 술을 마셨다. 밤의 불빛은 둥근 식탁에 놓인 술잔을 은은하게 비췄다. 중국 백주 중에서 주정도가 낮은 것이 아니라 65도나 되는 것을 마셨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담배를 연거푸 피워댔다. 그런데 그 독한 술은 한 모금을 입에 넣으면 혀끝이 타는 것처럼 얼얼하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이튿날 머리가 아프지 않고 속도 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마지막 헤어질 때 여비에 쓰라면서 약간의 돈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이 의외로 잘 되었구나.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강과 호수에 푸른 물은 넘쳐 흐르고 날씨가 온화해서 온 세상이 녹색으로 뒤덮이면서 아열대의 풍경과 냄새가 진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루쉰의 소설 Q정전은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중국 남부의 깊은 농촌이 배경이다. 그 소설에 나오는 아Q는 집도 절도 없고, 직업도 없고 가족도 없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재산도 없다. 당연히 글씨를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 나이 30이 다되었음에도 여자와 한 번도 접촉해보지 못했다. 김상빈은 북에 있을 때 광인일기와 함께 그 소설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은 적이 있다. 버스 안은 무척 덥고 그의 기분은 정말 우울하고 찝찝했다. 그는 달리는 버스의 창밖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현재 처지가 아Q 보다도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운남성 성도인 곤명에 도착하여 함께 간 브로커의 집에서 잠을 잤다. 오는 도중 브로커는 두 번이나 교대했다. 이번 브로커는 40대 중반으로 조선족으로 보이는데 사람은 좋아 보이고 친절했지만 손톱 끝이 구부러질 만큼 손톱이 길었고 손톱 사이에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었는데 지독한 골초여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중국인들이 주로 피우는 중화라는 상표의 담배였다.

탈북자는 어느새 13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들 일행은 다음날 다시 멍라행 버스를 탔고 국경 도시인 멍라에 도착하자 역시 브로커 집에서 며칠을 기다렸다. 저녁 무렵 어둠이 내리자 소형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동안 이동한 후 중국과 라오스 국경 부근 고산족이 사는 외딴 마을에 15시간을 걸어서 다음날 밤늦게 도착하였다. 중국 쪽 국경에 경비가 강화됐다. 그래서 마약 밀매범들이 주로 이용하는 험한 산길을 이용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무더위는 누그러져서 날씨는 쾌적하고 산천 초목은 변함없이 푸르르다.

그때부터 5시간가량 브로커의 안내로 국경 초소를 멀리 우회하고 산속 오솔길을 걸어 라오스 북부 산길을 이동하여 새벽녘에 산을 내려오니 브로커는 여기서부터 라오스라고 말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라오스 북부 국경 도시인 루앙남타 외곽이었다. 희뿌연 아침 안개와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도시의 윤곽은 멀리서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아침의 태양이 숲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산 중턱에 드리워진 안개가 슬그머니 사라졌고 황금과 녹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색채가 탄생했다. 그리고 잠들어있던 숲속의 생명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났다.

라오스에 도착하여 작은 마을 입구 노점에서 콩가루와 향신료를 잔뜩 넣은 굵은 쌀국수와 삶은 계란과 양배추를 섞은 라오스식 샐러드, 양배추로 만든 수프, 입안에서 불이 나는 라오스의 국민 음식인 땀막홍 등을 느긋하게 먹은 후 브로커들이 준비해 놓은 사파리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라오스의 이름도 없는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다음 날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에 라오스와 태국 국경을 흐르는 메콩강으로 갔고 선체 바깥으로 모터가 달린 폭이 좁은 목재 카누 2대에 나눠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니 도착한 곳이 태국이었다. 메콩강에 서식한다는 악어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김상빈은 손을 뻗었고 물살이 손에 부딪히면서 방울 방울 맺혔다 떨어졌다.

브로커들과는 배를 타기 직전 거기서 헤어졌다. 나이 먹은 브로커가 말했다. “여기서 헤어져야 된다고. 우리가 체포되면 안 되니까 태국까지 따라갈 수는 없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태국서는 단체 관광객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구. 남조선까지 무사히 도착해야지. 그렇지만 남조선이 천국은 아니니까 그렇게 알라구. 열심히 살아야 하지. 그리고 북쪽 고향을 잊으면 안 되지.”

그들은 태국에 무사히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 대륙을 북에서 남쪽으로 종단하고 동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데 20여 일이나 걸렸다. 김상빈으로서는 여행이 극도로 제한된 폐쇄 사회에 살면서 무한정 멀리 떠나는 여행을 꿈꾸며 살아 왔지만 이번 여행은 너무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지독한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나머지 마음 편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그들 일행은 하나원을 마칠 때까지 최소한 6개월 이상 생사고락을 같이할 사람들이었다. 태국에 도착하고 나서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으로 활짝 웃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다시 보면 세련되었고 상당한 지식인처럼 보인다. 아마 평양에서 태어나서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영어와 중국어에 완전히 능통했기 때문이다. 그녀 집안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고위층의 갑작스런 몰락에 따른 여파로 숙청과 추방이라는 구체적으로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했다.

그들 일행이 도착한 곳은 메콩강변의 국경 도시인 치앙라이 훨씬 북쪽 변두리였다. 약 두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서 강변에 내려 마을을 향해 30분 정도 걸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반갑게 손짓을 하였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나서 경찰 증명서를 흔들면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태국의 사복 경찰들이 마치 그들이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대기하고 있었다그녀가 일행을 대표해서 태국 경찰과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국경 불법침입죄로 즉시 체포되었다.